'언제나 나오나 했더니 완전 엑스트라 수준으로 등장하네요. 그럴 거면 왜 캐스팅 했는지. 유열씨만 불쌍해요.'18일 종영된 MBC 드라마 '천생연분'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에 비중있는 배역에 출연하기로 예정된 가수 유열을 애타게(?) 찾는 글이 잇따라 나붙었다. 16부작 미니시리즈에서 10회가 되서 겨우 얼굴을 비추는 수준이었니 그도 그럴만 했다. 결과적으로 유열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된 것이냐' '드라마에는 도대체 언제 나오냐'는 질문 공세에 시달리게 됐지만, 처음 '천생연분'의 강승완 역에 캐스팅 될 때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엄연히 영국 신사풍의 홈쇼핑회사 사장으로 황신혜와 낭만적인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급 조연을 제안 받았던 것.
'캐스팅 후에는 절대 AS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방송가 속설은 연기자로 깜짝 변신한 가수나 코미디언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다. "이제까지 꼬박꼬박 뒷줄에서 도끼질 하고 뛰어다니다 겨우 주인공 노릇 좀 하려니 드라마 곧 끝난답니다." KBS 대하사극 '무인시대'에 금강야차 이의민으로 출연하고 있는 탤런트 이덕화의 하소연이다. KBS 사극 '한명회'(1994) 등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은 주연급 연기자지만 정중부(김흥기)·이의방(서인석)에게 밀린 까닭에 채 20회도 되지 않는 '이덕화의 시대'를 위해 100회 동안 존재의 느낌이 희미한 조연으로 출연하는 비운을 맛봤다.
'특급 연기자들의 무덤'으로 불린 SBS사극 '여인천하'(2001)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발의 피'다. 당시 '새해엔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 한줄로 CF여왕에 등극한 김정은은 남장여인 능금 역에서 조기퇴출 됐고 길상역의 탤런트 박상민은 제갈공명 뺨치는 희대의 천재로 각색된 난정(강수연)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야 했다. 후문에 따르면 박상민은 참다 못해 연출자인 김재형 PD 앞에서 "길상이 차지하는 극의 비중이 원래 설명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고, 그 애타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는 동료 연기자들도 선뜻 그를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캐스팅 AS' 문제가 빈발하는 1차적 원인은 드라마 대본이 제작 전 완성되어 있지 않아 스토리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스토리 변경의 배후에는 '시청률'이라는 방송가의 지상명령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때그때 인기에 따라 드라마 캐릭터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니 이를 놀라운 순발력이라고 불러야 할지, 즉흥적 창조성의 극대화라 일컬어야 할지 모르겠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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