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25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단일팀을 파견한다는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남북체육교류사에 새 장이 열리게 됐다. 그동안 단일종목(탁구, 축구) 단일팀 구성,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동시입장, 국내서 열린 부산아시안게임 선수단 파견 등 크고 작은 교류가 이어져 왔지만 국제종합대회에 단일팀을 파견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분단이후 남북체육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은 90년 10월11일(평양)과 23일(서울) 열린 통일축구대회. 90베이징아시안게임 도중 현지에서 전격 합의된 통일축구대회는 분단국가간 교류라는 상징성 때문에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통일축구의 열기는 이듬해 4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역사적인 단일팀 구성으로 승화됐고, 6월에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단일팀의 8강 감격이 재연됐다.
이후 한동안 단절상태에 빠졌던 남북교류는 99년 친선농구경기를 통해 다시 물꼬를 텄으며 2000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동시입장을 극적으로 끌어냄으로써 남북화해시대를 열었다.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북측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올림픽에서 세계 4강권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성급한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단일팀이 될 경우 금메달 10∼15개 정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종목도 있지만 국가별로 할당되는 올림픽 티켓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례로 서독과 동독이 단일팀으로 출전했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60년 로마올림픽때 금메달 숫자가 다소 줄어드는 기현상을 겪기도 했다.
또 단일팀 구성이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001년 오사카세계탁구선수권대회때도 단일팀 원칙에 합의, 실무소위원회까지 발족시켰으나 북한이 막판에 불가방침을 통보한 적도 있기때문이다. 양측 NOC의 실무접촉에서부터 풀어야 하지만 복잡한 국제적인 현안들이 걸려 있다. 우선적으로 IOC와 국제경기단체를 통해 올림픽 출전티켓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체 경기의 경우 남북 스스로 구성 비율을 결정하면 되지만, 체급별 개인 종목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이다. 선발 과정이 결정되면 합동전지훈련 장소와 기간을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실무회담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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