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이끌었던 지난 1년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 고통이 경기순환의 불가항력적 결과인지, 정책적 실패 때문인지, 혹은 미래를 위한 체질 다지기의 시간이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인수위 시절부터 경제정책 수립·운영에 핵심 역할을 맡아온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겸 대통령 정책특보로부터 참여정부 1년의 경제적 공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눠봤다. 인터뷰는 경제부 남대희·이성철 기자와 산업부 유병률 기자가 담당했다.―참여정부 경제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입니다. 성장률 2.9%, 신용불량자 370만명, 청년실업률 8.8%…. 더구나 세계경제는 뚜렷이 회복되는 반면 유독 한국경제만 낙오되는 느낌입니다. 지난 1년을 어떻게 총평하십니까.
"성적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우리만 낙오됐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제로 성장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2.9%는 그리 나쁜 숫자가 아닙니다. 나름대로 경기회복에 애를 썼습니다. 다만 과거 정부처럼 부동산을 경기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지 않았지요. 당장의 불경기 해소 대신 저성장을 감내하며 장기적 체질강화를 위해 노력한 겁니다. 부동산 투기규제와 가계대출 억제 등을 감안하면 2.9% 성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요."
―한국경제학회 심포지엄에선 '개혁도 안정도 모두 놓쳤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일리 있는 얘기 아닙니까.
"인위적 부양을 안했으니 안정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신 체질강화와 구조개혁에 주력하지 않았습니까. 자꾸 개혁이 없었다고들 하는데, 집단소송제가 통과됐고 상속증여세 포괄주의가 도입됐습니다. 균형발전 지방분권 신행정수도 등 3대 특별법도 제정됐어요. 집권 1년만에 과연 이런 일을 한 정부가 있었습니까. 10·29 부동산대책도 마찬가지예요. 참여정부만큼 이 문제를 정면 돌파했던 정권이 있었나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합니다."
―부동산 대책을 성과라고 했는데, 더 일찍 집값을 잡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동산 가격 폭등 만큼 분배구조를 악화시키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다른 정권도 아니고 명색이 '분배'를 중시하겠다는 참여정부에서 집값이 뛰는 것을 방치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습니까.
"사실 지난해 5월과 9월에 나온 부동산 대책에도 종토세 과표현실화나 종합부동산세 도입 같은 핵심 사항들은 다 들어있었어요. 하지만 안 먹혀들어 갔기 때문에 결국 양도소득세 중과세와 거래신고제 내용이 추가된 10·29대책을 쓰게 됐던 겁니다."
―왜 10·29 대책을 5월이나 9월에 쓰지 않았습니까.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양도세 중과와 거래신고제 같은 것을 5월쯤에 썼다면 부동산 가격은 잡혔을지 모르지만 당시 여론은 그렇지 못했어요. 종토세 현실화나 재산세 강화조치만으로도 거부감이 무척 컸기 때문에 양도세 중과나 거래신고제 같은 강경 조치들은 도저히 쓸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정부로선 부동산문제도 가급적 정도로 풀려고 했지만, 정상적 수단으론 풀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10·29 대책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그런 거부감의 진원지는 기득권층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은 기득권층이 아니라 집 없고 돈 없는 서민 대중인데, 기득권층의 저항때문에 지지층을 외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요. 같은 맥락에서 정책 기조도 초기 '성장·분배의 조화'에서 '성장우선-경기방어'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장론자인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기용도 이런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총리는 성장과 개혁 둘 다 강조한 것으로 압니다. 불경기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성장을 강조한다고 나쁠 것은 없지 않나요. 다만 개혁이 뒷전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진 않다고 봅니다."
―정부 출범초 주요 포스트를 차지했던 개혁성향의 학자그룹이 대부분 관료출신으로 대체됐습니다. 이 역시 보수화의 증거 아닐까요. 위원장께서도 학자시절 '관료들은 GDP(국내총생산)의 늪에 빠져있다'고 말했을 만큼 관료들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나요.
"학자들이 맡던 자리가 관료들로 채워졌다면 관료주의로 경도됐다거나 보수화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관료에서 관료로 바뀐 겁니다. 제가 맡던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만 관료출신(박봉흠 실장)으로 교체됐을 뿐인데, 이는 국정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자는 취지였어요. 정책실장 업무가 너무 과중해 단기현안은 정책실장, 장기과제는 정책기획위원장이 맡는 쪽으로 역할분담을 한 겁니다. 관료중에도 젊은 사무관이나 과장급은 아주 개혁적입니다. 고위관료들은 아무래도 보수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1,000여명에 달하는 경제·경영학 교수들이 시국성명까지 내면서 참여정부의 경제운용에 대해 리더십 부재라며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솔직히 이번처럼 구체적 내용이 없는 성명서는 처음 봤습니다. 저도 교수시절 때론 분개심에, 때론 안타까움 때문에 많은 서명에 참여를 했지만, 그것은 어떻게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성명서는 '경제가 어려운 데 정부는 뭐 하느냐,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식의 아주 추상적 내용입니다. 이런 성명이라면 누가 서명하지 않겠습니까. 전문가 집단인 교수들이 양식을 갖고 서명할 때는 적어도 뭘 잘못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대안을 갖고 구체적으로 충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참여정부의 노사정책을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노사 대타협을 기반으로 한 네덜란드 모델 같기도 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영미식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의 고용안정이나 정년연장 같은 정책을 보면 일본식 기업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만 현재 노동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보다 30∼50%나 적어요. 똑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청년실업률도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보다는 중소업체등에서 경험을 쌓은 경력사원을 선호하면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지요. 대기업들이 인력양성비용을 신입사원 개인이나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비정규직 증가와 청년실업 확대는 기업들의 비용압박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비용압박이 커지다보니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교육·훈련비용이 들어가는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직원을 채용하면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게 된 겁니다."
―해법은 뭡니까.
"결국은 노사정 합의예요. 비정규직이 더 이상 늘어나선 안됩니다. 때문에 유연화 정책으론 더 이상 문제해결이 안됩니다. 하지만 기업은 비용압박이 커지면 비정규직과 경력직을 쓸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노사 대타협이 필요한 겁니다. 노조도 이젠 비정규직을 남의 문제로 보지 말고 과다한 임금인상도 자제해야 합니다."
―노사문제도 그렇지만 참여정부 출범이후 이익집단을 비롯한 사회적 갈등이 너무 많았습니다. 부안사태도 그렇듯이 정부의 의견수렴 절차에 문제가 있었고 너무 갈팡질팡한 것 아닌가요.
"과거 정부에 비해 갈등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숨겨졌던 갈등을 표면화한 것 뿐입니다. 갈등을 숨기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돌파하기 때문에 많아진 것처럼 보일 뿐이예요."
―정부 정책도 이젠 백화점식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참여정부 남은 4년간 가장 역점을 둘 3대 과제를 꼽아주십시오.
"먼저 한국경제 50년 고질병인 부동산 문제해결에 계속 노력할 겁니다. 부동산 문제는 중환자실 환자처럼 지속적으로 면밀히 감시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비정규직·여성·장애인·지방대출신·학벌 등 5대 차별 해소에 역점을 두고 싶고요. 마지막은 교육 혁신입니다.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창의적 인력을 대량 육성해야 해요. 공교육을 정상화해 학생과 학부모 모두 고통에서 해방시키면서 인간답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에 나서야 합니다."
/정리=이성철기자 sclee@hk.co.kr
사진=왕태석기자
대구·54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및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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