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사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며 의대에 진학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중년의 여성이 길고 긴 여정 끝에 의사의 꿈을 이루게 됐다.운동권 출신으로 85년 서울대에서 제적당한 윤영주(42)씨는 26일 열릴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입학한 지 23년 만에, 그것도 졸업생 중 최고령자로 학사모를 쓴다.
윤씨가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81년 봄. 의예과 새내기로 꿈 많은 대학 시절을 맞았던 윤씨는 친구의 형이 도서관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대부분의 386세대가 그러했듯 윤씨는 학생운동에 뛰어들면서 노동 현장과 감옥을 오가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걷게 됐다.
85년 의대 본과 2학년을 마치고 제적된 윤씨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 경기 성남 지역에서 '위장취업' 현장 활동을 했다. 윤씨는 87년 9월 조직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개월의 옥살이를 치른 뒤 집행유예로 풀려나 학교에 복학할 수 있었지만 결혼하면서 또다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92년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윤씨는 '학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94년 동의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7년 만에 이 대학을 수석 졸업한 윤씨는 2001년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으로 재입학하면서 그리운 모교로 되돌아왔다. 모든 것이 생소했고, 의대 졸업후 교수가 된 몇몇 친구들과는 '스승과 제자'로서의 어색한 만남을 해야 했다.
입학과 휴학, 제적과 복학을 거듭한 지 23년이 지나 의대를 졸업하고 최근 의사고시에 합격한 윤씨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한의와 양의의 길을 함께 갈 수 있게 됐지만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환자들의 심적, 육체적 고통을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다음달 경희대 한의대 동서의학대학원에 입학하는 윤씨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조화를 시도해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각종 질병에 대한 해답을 구해볼 생각이다.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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