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씨티은행 한국지점은 금융감독원에 새로운 약관신청서를 제출했다. 내용은 '향후 모든 기업고객 예금계좌에 월 10만원의 계좌관리수수료를 부과한다. 단, 대출이 있는 기업은 면제해주고 수수료를 내지 않는 기업계좌는 강제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휴면계좌도, 소액계좌도 아닌데 매달 10만원씩 떼어간다는 것은 국내 은행관행으론 상상하기 힘든 일. 금감원도 처음 보는 수수료 신설이 내킬 리 없었다. 하지만 금리나 수수료 문제는 은행의 자율결정 사항이었고, 금감원도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비록 여론의 반대로 씨티측은 계좌관리수수료 신설을 '당분간 보류'했지만, 통상적 금융관행과 감독체계로는 씨티의 영업스타일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이 확인됐다.
씨티의 한국시장 진출로 정부의 금융정책과 감독방식 역시 대변혁이 불가피해졌다. 금융의 수준은 곧 감독의 수준이다. 환란이후 재무적 감독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했지만, 아직도 은행-증권-보험식 '칸막이 금융'에 익숙한 국내 감독체계에는 첨단기법으로 무장한 외국 은행자본이 파고들수 있는 허점이 너무도 많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씨티가 맘만 먹으면 아마도 감독당국자들이 처음 보는, 손도 대지 못할 상품과 영업방식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보다는 여전히 관치의 칼을 뽑는데 익숙한 감독당국으로선 자칫 씨티의 파격에 뒷북만 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씨티가 당국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은 희박하다. "외국계 은행들은 종종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 외국은행의 눈엔 좀 불합리한 제도지요. 하지만 씨티는 의무대출제도 자체의 개선을 요청할지언정 정해진 비율을 어기는 법은 없습니다." 씨티를 접했던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을 단행할 때 국내은행에 맡기면 종종 정보도 새고 해당 은행이 자기자금까지 얹어 거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씨티에 한번 맡겨봤더니 정말 깨끗하게 처리하더군요. 지독한 사람들입니다."
'중앙은행이나 감독당국에 맞서지 말고 룰도 어기지 말라'는 것은 씨티의 오랜 철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치는 더 어려운 것이다. 뭔가 잘못을 해야 감독당국도 '팔을 비틀' 여지가 생기는데, 씨티의 영업엔 그런 허점이 없는 것이다.
외국은행의 은행시장 전면 진입으로 금융감독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씨티는 한미은행을 비상장화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상장폐지로 주주에 의한 견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유일한 감시자는 감독당국 뿐이다. 금융연구원 최장봉 박사는 "씨티의 등장이후 역외와 역내, 해외본점과 국내지점간 거래등 영역을 넘나드는 (cross-bordering) 감독의 필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은행만 볼 것이 아니라 자회사와 연관사업 등을 묶어서 보는 금융그룹 감독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씨티는 '합법적 파격'으로 감독의 사각지대를 끊임없이 파고 들 것이다. 시장교란과 국부유출을 막으려면 감독당국은 허점을 계속 사전 봉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감독시스템과 당국자들의 인식으론 이 지략싸움에서 승리할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변형섭기자 hispee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