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로 유명한 강준만 교수는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10대 후반에 한번 치르는 전쟁의 과부하를 평생에 걸쳐 분산시켜 합리적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적어도 지금까지 대학입시는 사회적 선발에서 거의 절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사람을 뽑을 때 고학력과 명문학교라는 잣대 이외에 마땅한 대체 선발 기제를 개발하지 못했다. 기업은 앞 다투어 학력이 높은 사람, 명문 학교 출신을 골라서 요직에 등용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즉, 학교가 곧 등용문인 등식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등식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학교였다. 학교 교육의 결과가 고용시장에서 지위를 결정하는 관계가 유지되는 한 학교는 결코 입시교육과 취업준비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어떻게 이 운명의 끈을 끊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평준화, 대입 본고사 폐지, 내신 중심 선발 등은 바로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더 이상 '한 줄로 세우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기업 및 노동시장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학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사람을 뽑을 기준을 마련하는 데 무관심했던 기업들은 이러한 학교의 몸부림을 애써 외면하였고, 여전히 학벌주의와 학력주의에 연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학교가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평준화 폐지, 대입 본고사 부활, 명문 학교 부활 등을 외치고 있다.
그 가운데 끼어 있던 대학입시는 기형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학교가 폐기하려고 하는 입시교육을 학원과 과외가 재빠르게 떠안았고, 그것이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카르텔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휘청거리고 있지만 공교육 정상화의 길은 분명하다. 학교가 사회적 선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제 기업도 더 이상 학력과 학벌에 집착하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좋은 인재를 스스로 뽑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졸업장과 성적 이외에 어떠한 사회적 선발 기준이 가능할까? 외국에서 사람을 뽑는 기준은 이른바 '경력'과 '능력'이다. 뽑을 일자리에 적합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과 함께 그 일을 구체적으로 할 줄 아는가라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경력과 능력의 적합성 및 수월성을 검증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정착시켜 왔다. 그러한 체제 아래에서 학벌이나 학력은 기껏해야 3년이 지나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고용 동향은 주로 경력자를 뽑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 당분간 청년실업이 지속되겠지만 다양한 탐색을 통해 해당 분야의 경력과 능력을 쌓는 이른바 인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경력과 능력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 공부보다 더욱 집중적인 현장 학습을 통해 진정한 실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에 걸친 과정이다. 평생에 걸친 이러한 자기 능력 계발 과정을 우리는 평생학습이라고 부른다. 평생학습이 촉진되고 그 결과가 정당하게 평가될 때, 그 결과로서의 경력과 능력은 새로운 사회적 선발 및 능력 계발 장치로 자리잡을 수 있다. 바야흐로 학력사회가 아닌 능력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평생교육 체제 구축을 통해 완성된다. 일회적 선발이 평생에 걸친 선발로 전환된다. 그것은 학교 교육과 현장 직업능력 개발을 화학적으로 접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교육과 경제의 상생적 윈윈(win―win) 전략이다. 우리가 사교육 문제에 찌들어 있는 동안 이미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10년 전부터 국가 평생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 숭 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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