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처지를 담은 탄원서를 써도 판사님들이 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강도 혐의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된 수형자)"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다 읽어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아쉽네요."(형사 재판장)
법정의 높다란 판사석과 낮은 피고인석의 차이만큼이나 좀처럼 같은 눈높이로 상대를 보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이 24일 마주 앉았다. 40명의 형사부 판사들은 이날 안양교도소를 방문, 실형이 확정된 재소자를 직접 면담했다. 판사의 재소자 면담은 사법 사상 처음으로, 지난 18일 정기 법관 인사에서 신임 형사재판장으로 발령받은 164명의 중견 판사들을 위한 '신임 형사 재판장 연수' 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재소자 면담에 앞서 색 바랜 민들레꽃이 그려진 교도소의 긴 담벼락, 퀴퀴한 냄새가 깊이 배어있는 복도, 일하러 나간 재소자들을 기다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수용실 등을 둘러보는 판사들의 얼굴 표정에는 '죄가 아닌 육체를 구속하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뇌가 묻어났다. 판사들은 미싱소리가 요란한 봉제작업장 등에서 재소자들의 경계하는 눈빛과 맞닥뜨릴 때면 불청객으로서의 어색함을 감추지 못해 힘들어 했다.
판사들은 20여분간 수형시설을 참관한 뒤 3개 교육실에서 30여분 동안 재소자들을 면담했다. 각 실마다 13, 14명의 판사와 3, 4명의 재소자들이 마주 앉아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나눴다. 만기가 가까운 수형자 가운데 지원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남은 "반갑습니다, 앉으세요"라는 어색한 인사말로 시작됐지만, 판사들은 재소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판사석에 앉은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사선 변호사를 구하려 했더니 1,000만원을 달래요. 그럼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아세요. '아, 판사들에게 줄 로비자금이구나'…" "국선 변호사 선임을 했는데, 면담은 딱 한 번 오고 말더라구요" "피해자 가족하고 합의를 못해 실형 5년을 받았습니다. 합의만 했다면 형이 깎였겠지요. 판사는 합의를 하라는데, 우리 집에는 돈이 없었거든요." 판사들은 재소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메모를 했다.
면담이 끝난 뒤 광주지법의 한 판사는 "좋은 기회였다"며 "무조건 판사들을 원망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혐의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에서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안양교도소 외에 영등포·의정부 교도소와 서울보호관찰소에서도 40∼44명의 형사 재판장들의 재소자 면담이 이어졌다.
/안양=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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