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설국/사랑도 상처도 설경에 묻혔다
알림

신설국/사랑도 상처도 설경에 묻혔다

입력
2004.02.24 00:00
0 0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여배우 유민(일본 이름 후에키 유코)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신설국(新雪國)'이 27일 개봉한다.고토 고이치 감독의 2001년 작품으로 5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수입추천을 통과한 데 이어 17일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아닌 성인등급의 일본영화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상륙했다.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첫 수혜작인 셈이다.

영화는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설국이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의 첫 문장을 그대로 옮긴 듯한 화면으로 시작한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일본 니가타현의 쓰키오카 마을. 사업에 실패한 50대 남자 시바노 쿠니오(오쿠다 에이지)가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곳에서 쿠니오는 청순한 게이샤(藝者·일본식 기생) 모에코(유민)를 알게 되고, 두 남녀는 각자의 슬픔을 뒤로 한 채 서로를 어루만져 주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기모노를 입은 유민의 깜찍한 모습과 청순한 얼굴, 비극적 결말이 새롭기는 하지만 영화는 범작(凡作)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 인터넷사이트 유출로 포르노논쟁까지 일으켰던 극중 정사장면도 아름다운 소품 정도에 그칠 뿐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깨닫게 되더군" 식의 대사도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 했던 두 남녀가 어떻게 서로에게 이끌렸는지에 대한 영화적 설득이 부족하다. 또 왜 모에코가 끝에 가서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것이 '동병상련'이었고, '치유 불능의 상처' 때문이었다면 영화는 관객 설득에 너무 인색했거나 실패한 셈이다.

영화는 대신 일본의 아름다운 은빛 설경에만 집중했다. 길거리에도, 술집 앞에도, 모에코의 옛 애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때도 온통 눈이다. 2001년 일본에 수십 년만의 폭설이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촬영이 가능했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설 '설국'의 후광에만 기대려 했다는 인상만 남겼다. 세상을 치유하는 눈의 숭고한 이미지는 첫 장면으로 족했다.

원작은 '설국'을 리메이크한 나오키상 수상작가 사사쿠라 아키라의 동명소설. 시마무라라는 남자가 쿠마코라는 기생에게 끌려 온천장을 세번이나 찾아간다는 '설국'의 내용을 현대판 버전으로 옮긴 것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