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61)씨의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이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베트남 정부와 합작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차승재(44) 대표는 23일 "최근 황석영씨와 '무기의 그늘'을 영화화하기로 하고, 판권료 5,000만원에 약간의 런닝개런티(흥행수입의 일부를 받는 것)로 정식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또 "1월 한국을 방문한 휴틴 베트남작가동맹 서기장 겸 입법의원도 제작을 적극 지원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지난해 9월 베트남을 방문, 베트남작가동맹을 통해 '무기의 그늘' 프랑스어판을 소개한 황석영씨는 "'무기의 그늘'의 베트남어판 출판과 함께 영화를 위해 베트남 정부가 소설의 배경인 다낭에서의 촬영을 허가하고 지원도 하겠다고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올 가을부터 제작에 들어갈 영화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 현지촬영은 물론 현지 배우와 스태프 등이 참여하는 최초의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정지영 감독의 '하얀전쟁' 등이 베트남에서 현지 촬영된 적은 있지만, 베트남 정부기관인 영화총국(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과 작가동맹이 앞장 서 한국영화 제작지원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제작비는 80억∼100억원으로, 홍콩이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고 프랑스가 영화 후반작업을 담당할 계획이다.
'무기의 그늘'은 황석영씨가 1967년 베트남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한미 합동수사대 소속 안영규 병장이 겪은 베트남 전쟁의 이야기로 1983∼87년 '문학사상' 등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 89년 제4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황씨는 소설을 통해 미군과 베트남 정부군, 민족해방전선 등 적과 동지 간에 오가는 물자 암거래를 통해 '미국이 벌이는 비즈니스'로서 추악한 전쟁의 본질을 고발했다. 안영규 병장, 민족해방전선 공작원 팜민, 베트남 정부군 팜꾸엔, 전쟁 와중에 달러를 사들이는 오혜정 등 4명의 주인공은 한국, 홍콩 배우가 맡는다.
감독은 화교 출신의 신세대 영화감독 필감성(31). 현재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후 '영어완전정복'(연출부), '말죽거리 잔혹사'(현장편집) 등을 거쳤고 최근 영화 '211'을 통해 본격적인 감독의 길로 나섰다.
차 대표는 "영화총국의 시나리오검열을 통과해야 하지만 이미 소설 출간을 허락했고, 최근 베트남 영화 스태프 9명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달 동안 기술연수를 받고 돌아갔으며, 현상팀도 곧 방한키로 하는 등 황씨의 작품과 한국영화계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호의를 감안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황씨가 최종 감수를 맡기는 하겠지만 소설 '무기의 그늘'이 발표됐을 당시의 문학적 엄숙주의와 민족주의 대신 요즘 시선에 맞게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적은 원작료를 받고 영화화를 허락한 배경에 대해 황씨는 "과거문학이 해오던 일을 요즘은 영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실미도'를 봤는데 과거라면 어림도 없을,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일을 영화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는 호흡하는 실제 현실을 담지하는 능력이 갖춰졌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술이 놀랍게 발전했다"며 "'무기의 그늘'도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영화기술이 결합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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