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은 회원국 간 시장 개방과 비회원국에 대한 대외 차별이라는 양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원산지 규정이다.예컨대,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할 경우 일본 기업이 많이 진출한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제품이 일본을 우회하여 유입될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다. 또한 세계 각국의 제품이 중계무역 국가인 싱가포르를 통해 우회 수입된다면 국내 시장은 크게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원산지 규정은 이처럼 비회원국이 FTA의 특혜조치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제품의 원산지를 적절히 판정하고 또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FTA 협상의 주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최근 FTA 협상이 가속화함에 따라 본 제도의 운영과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원산지증명을 수출자가 자율적으로 작성할 것인지 아니면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발급하는 기관발급제를 채택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관발급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등 대륙법 계통의 법 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는 대체로 상공회의소 등을 통한 기관발급제를 채택하고 있고, 미국과 중남미 등 영미법 계통의 법 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는 자율 작성제가 많다.
원산지증명 제도가 FTA의 취지에 맞게 운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신력 확보가 중요하다. 증명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 없거나 사실과 다를 경우 여러 가지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출업자가 스스로 작성하는 방식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발급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관이 원산지증명을 발급할 경우, 원산지 판단을 위한 전문적인 검토가 사전에 이뤄지는데다 업체에 대한 상담과 사후 관리 등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속한 통관을 지원하는 효과도 갖는다.
원산지증명을 수출자가 직접 작성하여 제출하면 증명 발급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관 절차의 전반적 효율성은 단순히 수출자가 부담하는 직접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통관 절차 전체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고려하여 평가해야 한다. 특히 원산지증명은 수입자의 요청에 의하여 수출자가 첨부하는 것이므로 수입국의 제도적 환경을 무시하고 수출국이 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원산지증명 제도를 자율 발급제로 바꾸려는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앞으로 더욱 많은 국가와 FTA 협상이 예상되는 만큼 현행 기관발급제를 유지해 공신력을 강화하고 통관 절차상의 암묵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제도적 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은 문제 하나라도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 홍 렬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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