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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퇴짜에 스트레스도 받았죠" 50∼70대 "왕언니" 4명 이대서 감격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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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퇴짜에 스트레스도 받았죠" 50∼70대 "왕언니" 4명 이대서 감격 졸업장

입력
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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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이화여대 졸업식의 주인공은 단연 '왕 언니들' 이었다. 지난해 5월 이화여대가 재학 중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학칙'을 폐지함에 따라, 캠퍼스로 다시 돌아온 20명 중 4명이 이날 학사모를 쓴 것.이들은 이날 입학한 지 수십년 만에 꿈에 그리던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국문학과 51학번 정옥희(72)씨, 교육학과 51학번 강영희(72)씨, 의류직물학과 72학번 인혜연(52)씨, 그리고 신분을 밝히기를 꺼린 30대 주부가 그 주인공이다.

정옥희씨는 1951년 입학해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정씨는 지난해 금혼학칙 폐지 소식을 전해 듣고 딸과 함께 살고 있던 미국 LA에서 달려와 그해 9월 복학신청을 했다. 손녀 뻘 학생들과 학교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며 다시 학생이 됐다는 생각에 지난 한학기 내내 들뜬 기분이었다. 그러나 70대 노(老) 학생에게 학업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정씨는 "컴퓨터에 익숙치 않아 5∼6시간씩 공들여 작성한 과제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허탈해 할 때도 있었고, 며칠밤을 새가며 쓴 졸업논문이 요즘 논문형식에 맞지 않아 교수님으로부터 퇴짜를 받아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고 지난 6개월을 회상했다. 미국에서 수필가로 활동한 정씨는 늦깎이 복학생으로 지낸 6개월을 소재로 조만간 3번째 수필집을 발표할 계획이다.

역시 한 학기를 남긴 54년 당시 해군 소령이던 남편과 결혼하는 바람에 캠퍼스를 떠나야 했던 강영희씨는 "이제야 가슴에 남은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졸업반 학생들은 취업난 때문인지 말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며 "생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도서관으로, 학원으로 왔다갔다하는 4학년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과거에 내가 못해본 것들을 마음대로 누려 부럽기도 했지만 너무 안쓰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보다는 한참 어린 후배 격인 이혜연씨는 "후배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는 크게 달라진 데 비해 사회의 변화가 거기에 못 미치고 있어 안타깝다"며 "아직도 취직 전선에선 50년대식 사고로 여성을 차별하는 곳이 많아 요즘 아이들이 오히려 더 답답해 하는 것 같다"고 후배들을 걱정했다. 강씨는 졸업과 동시에 예전의 전업 주부로 되돌아가고, 인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업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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