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23일 최종 확정됐다. 외국은행이 국내은행을 사들인 첫 사례다. 첨단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세계최대 금융자본이 한국시장 공략을 시작함에 따라 향후 은행판도와 금융관행, 금융정책에 몰고 올 파장을 집중 분석한다. ★관련기사 B1면/편집자주
"씨티였다면 처음부터 LG카드엔 대출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임원은 씨티의 금융분석력을 단연 세계 최고로 꼽았다. "씨티엔 철강 자동차 곡물 금융 등 업종별로 베테랑 대출 심사인력이 짜여져 있어요. 해당업계 종사자들보다도 더 정확한 사람들이지요. 국내 은행들이요? 업종분석은 커녕 기업재무제표도 제대로 못 봅니다. 대부분 씨티 같은 곳에서 만든 리포트를 비싼 값에 사오고 있지요."
씨티는 세계 금융계의 '골리앗'(최대 규모)이자 '다윗'(최고 금융기법)이다. 기왕에 국내 은행권에 진출한 뉴브리지 론스타 칼라일 같은 펀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익만 챙기면 언제든지 떠나갈 단기성 자본과는 달리, 정통 은행자본인 씨티는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영토를 넓혀 갈 것이다. 기존 국내 은행들과 정면대결이 불가피한 것이다.
씨티그룹의 총자산 규모는 1조972억달러로 국내 최대인 국민은행의 8배에 달한다. 총자산이익률(ROA·2.08%) 역시 국민은행의 2배가 넘는다. 씨티가 인수한 한미은행은 '중소형 은행'이지만, 무한대에 가까운 배후자본력과 세계를 석권한 대출·투자·마케팅 능력이 동원된다면 은행판도는 현재의 토종 '빅4(국민 우리 신한 하나)과점' 체제에서 씨티가 추가된 5강 구도의 대혈투가 예상된다.
당장 고액자금의 '엑서더스'를 그려볼 수 있다. 이제 씨티은행은 고수익과 안전성, 근접성까지 확보, 부유층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씨티의 등장은 해외 펀드시대의 일단락과 본격적인 외국은행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이덕훈(李德勳) 우리은행장은 "한국의 은행은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황금 시장"이라며 "더 많은 외국은행들이 몰려 올 것"이라고 말했다. HSBC 스탠다드차타드 등 유수의 외국은행들은 이미 한국시장의 문 앞에 서 있다. 토종자본의 부재속에 향후 수년내 우리금융지주회사와 제일·외환은행 등 굵직한 은행매물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한국의 은행시장은 외국은행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하지만 씨티의 공격은 후진관행에 머물러 있는 국내 은행 발전에 강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李載演) 은행팀장은 "소비자입장에선 선택폭이 넓어지고 선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며 "금융산업의 업그레이드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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