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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2부 변화하는 일본사회 ① "구조조정" 일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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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2부 변화하는 일본사회 ① "구조조정" 일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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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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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전후한 고도성장기 일본사회는 여러 '신화'가 존재하던 시기였다. '종신고용제', '단일민족', '99% 중산층사회' 등의 믿음은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면서 중요한 이념적 안전판이 되었다.보다 사적인 차원에서 이 시기를 뒷받침한 것은 가족관련 제도와 관념이었다. 남자가 27세, 여자는 24세 정도로, 청춘남녀가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해서 두 명 쯤 아이를 낳고, 남편은 성실한 회사인간, 아내는 알뜰한 전업주부가 됐다. 고도성장을 담당한 샐러리맨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늘어나는 현금수입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장으로 있는 가족이 주는 '부담'과 유대였다.

탈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이후 일본가족에 대해선 우려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재일작가 유미리의 소설 '가족시네마'에서 잘 묘사한 것처럼 왜곡된 가족관계, 가족원간의 단절과 소외, 늘어나는 이혼율, 가정 내 별거, 폭력 등은 가족 '붕괴'와 '해체' 담론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최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가족관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초래하는 현상들이다. 만혼(晩婚)·미혼화로 상징되는 가족만들기에 대한 주저와 회의, 소자화(少子化)를 초래하는 출산기피, 이로 인해 심화되는 고령화는 일본가족이 '구조조정'중임을, 동시에 가족의 변화가 단순히 사적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도성장기를 지배했던 '개혼(皆婚)사회'라는 표현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에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30세까지, 혹은 30을 넘어서도 계속 미혼상태를 유지하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초혼연령이 현격히 늦어진 것을 만혼화라고 하지만, 이는 상당정도 미혼화 경향도 내포하고 있다. 2000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여성들 중 25∼29세의 54.0%, 30∼34세의 26.6%, 35∼39세의 13.5%가 미혼인 상태이다. 이젠 '미혼화 사회'라는 말이 당당히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여성의 만혼·미혼화가 여성 미혼인구의 공급과잉에서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1990년 이후 44세 이하 전체 연령대에서 남성인구가 여성을 초과하면서 결혼시장은 반영구적인 남성 공급과잉 상태이다. 단순한 통계논리에만 의존한다면 여성은 남성을 선택할 수 있고 남성에 비해 결혼하기 유리한 조건에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일본여성의 만혼·미혼화는 여성의 '적극적' 결혼 연기와 회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각종 통계지표와 조사결과들은 여성의 결혼관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결혼규범은 급격히 와해하고 있다. '결혼 안 할지도 모른다'의 단계를 넘어 '결혼 할지도 모른다'는 신드롬이 언급되기도 한다. 이렇게 결혼에 대한 여성의 태도가 바뀐 배경으로 흔히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와 경제적 자립, 남녀간 의식격차의 심화,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변화 등이 거론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만혼·미혼화가 여성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 국세조사는 남성들 중 25∼29세의 69.3%, 30∼34세의 42.9%가 미혼임을 보여준다. 특히 35∼39세의 남성 미혼율은 급증하여, 1970년에 4.7%에 불과하던 것이 1990년에 19%, 2000년엔 23.2%가 됐다. 이 연령대 남성의 대략 4명 중 한 명이 미혼이란 얘기다. 농촌총각의 결혼난으로 외국인 신부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남성의 결혼난이 농촌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출산을 미루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소자화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의 출산율은 전쟁 직후의 베이비 붐 이래 계속 저하했다. 1990년에는 1.57까지 떨어져 소위 '1.57 쇼크'라는 표현과 함께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출산율저하는 계속돼 1993년엔 1.46, 2000년엔 1.34까지 떨어져 세계최저를 기록했다. 2001년 이후엔 출산율이 더 낮아진 한국 덕택(?)에 최하위 자리는 면했지만 현재의 인구크기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소자화 경향은 특히 평균수명 증가와 맞물리면서 일본사회를 급속히 고령화시키고 있다. 고령화는 머지않아 노동력부족, 사회복지부담 증가 등 국가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노동력 감소로 인해 2005년 이후 15년간 GDP가 6.7%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버블붕괴 이후 지속된 불황으로 지난 십 수 년 간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이지만,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일본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소자화와 고령화를 꼽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급속한 소자화를 초래했을까.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변화, 여성의 경제적 활동과 바뀌지 않는 사회통념,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부족, 만혼·미혼화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일본정부는 소자화가 가져 올 결과에 대한 전망과 함께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체적인 큰 흐름이 바뀌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전후 수 십 년 간 가족을 둘러싼 여러 관념과 관행이 누적된 결과가 현재의 만혼·미혼화 및 소자화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 흐름을 바꾸기에는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권 숙 인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41세 서울대 인류학과 졸,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인류학 박사 저서 한일사회조직의 비교(고려대출판부) 등

■ 한·일 少子化 현상

일본 사람들은 만혼·미혼화와 여성의 출산기피 등으로 자녀가 줄어 드는 것을 소자화(少子化)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고령화 현상이 합쳐져 '소자·고령화 사회'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일본 사회의 소자화 현상에 대한 걱정은 대단하다. "앞으로 150년 안에 일본사람의 대가 끊긴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한 여자가 평생동안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낳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인 합계출산율이 2002년 현재 1.32를 기록했으니, 그런 걱정이 나올 만도 하다. 참고로 한 사회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적어도 2.1은 넘어야 한다.

1990년대부터 문제로 대두된 소자화 현상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해 왔다고 비판 받았던 일본정부는 극히 최근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다. 지난해 7월 '소자화사회 대책 기본법'과 '차세대육성지원 대책 추진법' 등 2개 관련법을 제정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 법은 그 동안의 단순한 대증요법적인 대책과는 달리 소자화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근원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이념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법은 소자화 대책의 기본 이념과 국가·사업·국민의 의무 등을 명문화했다. 반면 추진법은 소자화 대책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만들고, 이를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주에 의무화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지원책 등이 담겨있다. 추진법은 2005년부터 실행에 옮겨진다. 추진법에 대해 재계의 이의제기 등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피상적으로 인식해 왔던 소자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법적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2년 현재 1.17이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100년 안에 한국인의 대가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 정말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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