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이수복의 '봄비'에서)■ 주말에 봄비가 내렸다. 서울에서는 전봇대가 쓰러질 정도로 바람과 함께 비가 꽤 세차게 쏟아졌다. 그러나 거리의 행인은 모두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택시를 탔다가 길이 온통 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급한 마음에 기사한테 "차가 막혀 신경질 나죠?"라고 물었다. 그 기사는 "손님은 급하시겠지만 참 좋은 봄비가 아니겠습니까. 농촌에도 좋고요" 라고 대답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택시기사가 농촌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겐 아직도 농업국가의 정서가 살아 있는 듯하다. 이수복 시인이 읊었듯이 사람들이 모두 비가 그치면 찾아올 것들에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 계절을 나눌 때도 동양과 서양은 그 문화와 정서가 조금 다른 듯하다. 태양력을 쓰는 서양에서는 춘분(대개 3월20일)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날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인은 한 겨울 속에서 매화봉오리가 돋아나는 것을 보고 봄을 찾는다. 그래서 아직 한 겨울의 추위를 느낄 때인 2월4일경에 입춘(立春)절기를 만들었다. 지난 19일은 우수(雨水)였다. 날씨가 풀려 봄바람이 불어 오고 새싹이 돋아난다는 절기이다. 이번에 그야말로 우수의 절기에 딱 들어 맞았다.
■ 옛 속담에 '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 손이 커진다'는 말이 있다. 비가 많이 오면 풍년이 들게 되므로 아낙네의 씀씀이도 헤퍼진다는 뜻이다. 이제 봄비가 내렸으니 농촌의 일손이 바빠질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낙네 손이 커질 것 같지는 않다. 자유무역협정(FTA)의 여파로 농촌에는 빈곤한 풍년을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봄이 빨리 오는 것도 불안한 현상이다. 기후변화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사스'에서 조류독감으로 미생물이 창궐하는 등 뭔지 개운치 않다. 게다가 사상 최악의 황사까지 예보되고 있다. 세상사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전체가 어수선하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봄이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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