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승과 제자 간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는 그럴 때면 고교 1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다. 수학 담당이던 그 분은 동그란 얼굴에 눈두덩이가 두툼하고 볼이 약간 쳐져 있어서 별명이 '달마 스님'이었다. 선생님은 새 학기 첫 시간에 "당당해라. 원칙과 비전을 가져라. 그래야 진흙탕에 들어가도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당부했다.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의 당부를 어긴 적이 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집단 커닝을 한 것이다. 이제 갓 교사 생활을 시작한 여자 선생님이 시험 감독으로 들어오자 누군가가 보란 듯이 커닝을 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친구들이 커닝을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집단 커닝을 한 것이다. 시험 감독 선생님은 눈치를 챘으면서도 어쩐 일인지 별달리 제지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담임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인사를 받자마자 우리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점수 몇 점 더 받는 것이 중요해서 양심을 판 것이다."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어색한 침묵이 한참 흐른 뒤 선생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 들어라. 앞으로는 스스로 양심에 거리낌 없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라."
선생님은 "알았지?"하면서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때마침 교실 바깥에서 "예!"하고 떠나갈 듯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바로 옆 초등학교 애들이 조회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대답하는 소리였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생님은 의외의 사태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킥킥거렸고 이어서 모든 친구가 배꼽을 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선생님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칫 영원히 마음의 짐으로 남을 뻔한 일이 한바탕 웃음으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웃음에는 "너희들을 믿는다"라는 선생님의 바람과 "잘 하겠습니다"라는 우리의 결의가 녹아 있었다. 이후 우리 반은 달라졌다. 그 해에 전원 무결석을 기록했다. 선생님과 제자들 간의 믿음과 사랑이 서로를 뭉치게 한 것이다. 나는 당시의 해프닝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장주현·서울 노원구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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