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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in&out/프로농구 용병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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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in&out/프로농구 용병 24시

입력
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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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프로농구는 이제 숨가쁘게 6강 플레이오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팀 전력의 50%이상을 차지한다는 외국인 선수들은 이제 국내프로농구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당연히 각 구단들은 용병의 선택과 관리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온 용병들은 전혀 문화가 다른 한국 땅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어본다.향수를 어떻게 달래나

가족과 떨어져 낯선 문화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일. 특히 숙소가 대부분 한적한 도시 외곽에 위치하다 보니 휴일에는 서울의 이태원이나 홍대 앞 등지로 나가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일요일 경기가 끝난 뒤 하루 이틀의 휴식기에는 용병들이 서로 연락해 우르르 '출동'에 나선다. 용병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는 단연 성격이 활달한 안드레 페리(서울삼성·리바운드2위). 유머감각이 뛰어난데다 독한 위스키를 즐기는 '술고래'이다. 장난기가 유난히 심한 앨버트 화이트(전자랜드·득점2위)도 음주가무에서 둘째라면 서러워 한다.

이들이 즐겨찾는 곳은 이태원의 멕시칸 레스토랑 '판초스.' 나이트클럽과 흑인 바도 즐겨 찾는 곳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우람한 체격의 용병들이 이태원에 출현하면 당연히 젊은 여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게 마련"이라며 "국내는 물론 러시아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귀띔한다. 그날 밤 용병들은 또 다른 덩크슛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독한 구두쇠들

용병들의 특징은 하나 같이 구두쇠라는 점. 한 구단 관계자는 "술 마시러 가도 4,000∼5,000원 짜리 버드와이저 같은 병맥주 하나씩 들고 몇 시간씩 떠드는 게 보통"이라며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점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다"고 전했다. 단 용병들의 지출은 서울의 술집에서 지방의 숙소까지 왕복 택시비로 많이 나간다고.

물론 휴일에도 숙소를 차분하게 지키는 '방콕파'들도 많다. 스테판 브래포드(서울SK)는 술을 잘 못하는 '바른생활과.' 이들은 혼자 있을 때 컴퓨터게임에 빠지거나 미국 집에 전화를 많이 한다. 용병들이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화요금은 대략 20∼30만원. 예외도 있다. 몇 해 전 삼성에서 뛴 벤자민은 애인과의 전화통화로 월 100만원을 쉽게 넘겼다. TG삼보의 경우 매달 용병들에게 1만원짜리 콜링카드 5장씩 지급하는 등 많은 구단이 일정 부분 보조해준다.

한국음식 적응도

오랫동안 모국에서 길들여진 입맛이 단시간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갈비나 불고기는 비교적 좋아하지만 대다수 용병들이 한국음식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경기 직후 회센터에 가서 산낙지를 먹는 국내 선수들을 보면 기겁하곤 한다. 반면 아티머스 맥클래리(오리온스)는 대표적인 '코리안푸드 킬러.' 초밥이나 라면은 물론 하루 4끼 밥을 먹는다. 특히 두부를 송송 썰어넣은 얼큰한 된장찌개가 나오면 밥을 듬뿍 말아먹을 정도라고 한다.

왜 한국리그를 선택했나

물론 돈 때문이다. 97년 프로가 출범한 이래 용병들의 수입은 월봉 1만 달러로 동결된 상태. 활약에 따라 승리수당 등 인센티브가 있지만 팀 당 용병 2명을 합쳐 한 달에 3,000달러 이상 받을 수 없다. NBA를 제외하고 최고 수준인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에 비할 때 형편없는 액수. 그러나 전적으로 세금을 제한 금액이고 많은 경비를 구단에서 지원해줘 월급을 고스란히 고향으로 챙겨갈 수 있다. 거기다 열광적인 경기장 분위기는 한국리그를 선택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독특한 경력과 이색 취미

KCC의 찰스 민랜드는 약사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오리온스의 레이저는 골프 애호가. 실력도 싱글 수준이다. 구멍 안에 공을 넣는 것은 골프나 농구나 마찬가지여서 잘 칠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같은 팀 R.F 바셋은 재즈 뮤지션. 피아노와 색소폰, 트럼펫 등을 능숙하게 다룬다. 숙소에서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치열한 농구코트를 잠시 머리에서 지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통역 잘해야 경기도 승리 영문 농구서적도 읽어요" 서울 SK 박준씨

용병들의 한국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바로 통역이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SK의 숙소에서 만난 통역 박준(34·사진)씨의 손엔 '성공적인 코칭 방법(Successful Coaching Method)'이라는 영문 농구서적이 쥐어져 있었다. 이유를 물어 봤더니 "말이 통해야 이기죠. 제 능력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요"라고 설명한다. 작전타임 사인이 들어오면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감독이 의도한 대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

"감독의 지시를 정확히 전달하려면 단순한 영어 실력 외에 농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는 그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농구용어를 용병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원서를 들고 산다고 했다. 이상윤 감독이 속공을 지시하면 "Go fast break", 더블팀을 당하는 순간 상대 수비수 한 명이 모자라는 것을 역이용해 찬스를 만들라는 작전은 "Decoy"라고 용병 귀에 대고 외친다.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를 공부한 뒤 2002년 한일월드컵 조직위에서 경기장 의전담당관으로 일했던 그가 용병통역사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은 SK나이츠 사무실이 같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있는 SK구단에서 통역을 구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지망하게 됐다. "통역은 용병의 식사해결은 물론 연봉을 비롯한 자금관리까지 해주는 로드매니저 역할도 합니다. 휴가 때 함께 지내는 것에서 심지어 용병 가족들의 생활관리까지 업무 영역에 한계가 없어요. 원정경기 때마다 직접 햄버거나 피자, 치킨을 배달하기 위해 차를 몰고 낯선 도시를 헤매는 것은 기본이죠."

"경기에서 진 뒤 국내 선수들은 얼음처럼 굳어 무거운 분위기인데 문화적으로 다른 용병들은 자기 의견을 내세울 때가 가장 난감하다"는 박씨는 "그렇지만 용병들이 경기에 잘 뛰어 맹활약 할 때는 누구보다도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통역"이라고 전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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