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3년 2월23일 유대계 국제 금융자본의 상징인 로스차일드가(家)의 실질적 비조(鼻祖)라 할 마이어 암셸 로트실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812년 몰(沒). 가문의 문장(紋章)에서 유래한 '로트실트'라는 성은 '붉은 방패'라는 뜻이다. 마이어 암셸 로트실트는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죽었지만 그의 자손들은 여러 나라로 퍼져 그 지역의 금융계와 인접 사업을 틀어쥐었던 터라, 이 가문은 영어권의 로스차일드를 비롯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린다.마이어 암셸 로트실트는 생전에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유럽 다섯 개 도시에 로스차일드 은행을 세운 뒤 다섯 아들에게 경영을 맡겼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 마이어 암셸(1773∼1855)이 프랑크푸르트 본점을 맡았고, 둘째 잘로몬(1774∼1855)이 빈 지점을, 셋째 나탄(1777∼1836)이 런던 지점을, 넷째 카를(1788∼1855)이 나폴리 지점을, 막내 야콥(1792∼1866)이 파리 지점을 맡았다. 이들 다섯 형제는 모두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야콥은 루이18세, 샤를10세, 루이 필리프 등 프랑스 국왕 셋을 고객으로 삼았다.
나탄이 세운 영국 가문은 정치적으로도 두드러졌다. 나탄의 아들 라이어넬 네이선(1803∼1879)은 영국 최초의 유대인 하원의원이 되었고, 손자 네이선 마이어(1840∼1915)는 영국 최초의 유대인 상원의원이 됐으며, 증손자 라이어넬 월터(1868∼1937)는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17년 11월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로부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우는 것을 영국이 돕겠다는 공적 약속(밸푸어 선언)을 받아냈다. 야콥의 프랑스 가문 역시 그 나라의 금융계를 움켜쥐고 시오니즘을 적극 지원했다. 로스차일드는 가문이라기보다 제국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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