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일본 도쿄에서 근무할 때다. 지하철 역 부근에 조그만 동네 서점이 있어 오다가다 들러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웃 집 사람들과 자주 만났다. 자연히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추천한 책에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휴일에는 책을 싸게 파는 임시 장터도 가끔 열렸다. 주로 동네 도서관에 있던 책들이었는데, 장소가 부족해 더 이상 보관할 수 없는 것들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도 안 보는 책을 가지고 나와 필요한 책들과 교환하기도 했다. 그 분위기가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1월 초 서울 시내 도심 한 복판에 있던 태평서적이 문을 닫았다. 시청 버스 정류장 앞에 위치해 가끔씩 들렀었는데, 며칠 전 가보니 없어지고 말았다. 2002년 6월 사라진 종로서적의 뒤를 이은 셈인데, 지금도 종로서적 근처를 지나려면 느끼는 뭔가 서운한 감정을 시청 근처에서도 반복하게 됐다. 2백 여 평 규모에 18만 여권을 갖춘 대형 서점이었는데, 장사가 안 돼서 그랬을 것이다. 주위에 회사들도 많고, 오가는 사람들도 상당해 20여 년을 버텼지만 더 이상은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 서울의 동네 책방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내 동네서점은 지난해 말 547곳에 불과하다. 서울시내 동이 522개인 것을 감안하면 1개 동에 1곳으로 인구 1만8,000명당 서점 하나인 꼴이다. 3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초대형 서점의 붐비는 인파와는 대조적이다. 서점도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산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영상매체의 위력이 세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긴 그 좋은 위치에서 누가 이윤이 적은 책방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 근처에서도 서점을 찾기가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 오늘 오전 10시30분, 서울 송파구청 앞 지하상가에서 '헌책 은행'이 문을 연다. 아파트 등에서 버려지는 책이나 주민들이 모은 책을 판매하거나 교환하는 장터다. 각종 서적 1만 여권을 마련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책 값도 아주 싸다. 권당 200∼500원이라고 하니, 저렴하게 마음의 양식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번 달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3월부터는 오후 6시까지 매일 열린다. 외국에 여행할 때면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이런 책 시장이다. 송파구의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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