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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신인왕 MVP 재소자 복서 현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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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신인왕 MVP 재소자 복서 현주환

입력
2004.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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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전국복싱신인왕대회 결승전이 열린 14일 전북 무주의 예체문화회관 특설 링. 슈퍼페더급(58.969㎏ 이하)에 출전한 현주환(玄周煥·22)은 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168㎝의 크지않은 키지만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 그리고 매서운 눈빛. '자,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다.' 예선서부터 세 게임을 모조리 3대0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거치고 이 자리에 섰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더구나 비디오테이프로 본 상대는 펀치력이 만만치 않은 파이터였다.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복서 분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원초적인 것. "할 수만 있다면 매번 시합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불세출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 조차 경기 시작 전까지는 끔찍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지 않았던가. 그가 링 안팎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댔던 것도 사실은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했다. 한 때의 부질없는 객기로 죄인이 된 주환. 그가 이 순간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것은 앞으로 헤쳐가야 할 삶 전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링 아래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은 어머니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 때문에 숱하게 눈물을 흘린 두 분…. 마우스피스를 끼운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공이 울렸다. 막연한 두려움은 일순 사라지고 맹렬한 투지가 온 몸을 휘감았다. 경쾌한 푸트웍(종목 특성상 영어용어를 많이 쓸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하길)으로 몇 번 잽을 던지다 슬몃 가드를 열고 얼굴을 대줘 보았다. 파워를 가늠해보기 위한 것. 날아든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예상했던 대로 묵직했다. '아무래도 힘이 떨어지는 후반에 승부를 내야겠다….'

그런데 찬스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위빙, 더킹으로 주먹 몇 개를 흘려보냈을 때 번득 열린 배가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라이트 보디블로를 가차없이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움찔하며 균형을 잃는 상대, 곧바로 레프트보디와 훅으로 더블을 친 뒤 가드가 처진 안면에다 전광석화 같은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예선 때 다친 손등에 찌릿한 통증과 함께 너클에 제대로 된 느낌이 왔다. '걸렸다!' 상대는 그 라이트 한방에 무너져 링 위에 뒹굴었다. 1라운드 42초만의 KO승. 우승이었다.

부모님에게 뛰어내려갔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계셔서 이길 수 있었어요…." 목이 메어 말이 더 나오질 않았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껴안은 아버지의 온 몸이 격하게 떨렸다. 미들급까지의 모든 경기가 끝난 뒤 한국권투위원회(KBC)는 현장에서 만장일치로 주환을 대회 MVP로 뽑았다. 쏟아지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이제 정말 부모님께 효도하게 돼 너무나 기뻐요."

봄날 같은 햇볕 속 언덕에 앉은 천안소년교도소는 음침한 느낌을 주는 여느 교도소와 달리 마치 분위기 좋은 학교 같았다. 운동장에서는 한 떼의 아이들(이곳엔 주로 스무살 미만의 남자 초범들이 수감돼 있다)이 함성을 지르며 공을 차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는 비디오를 보거나 노래를 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권투체육관은 여러 기술을 배우는 실습실들을 지나 복도 맨 안쪽에 있다. 넉넉한 인상의 최한기(崔漢基·47) 코치가 10여명 부원들 틈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주환을 불렀다. "저 친굽니다. 진짜 '물건'이죠." 뜻밖에 여려 보이는 그가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근성, 순발력, 체력을 다 갖춘 데다 펀치력까지 일품입니다. 얘 체격으로는 사실 밴텀급(슈퍼페더급보다 5∼6㎏이상 가볍다)이 적당해요. 여긴 감량 시설이 없어서 평소 체중으로 뛰고 있지만. 그런데도 그 체급 선수들이 펑펑 나가떨어지잖아요. 이 다음에 밴텀급으로 뛰면 대단할 겁니다."

주환은 말수가 적고 어눌했다. 무엇보다 지난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채 모기만한 목소리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제가 … 철이 없었어요…." 저지른 잘못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러니 그의 삶 얘기는 그저 간단한 프로필 정도나 쓸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외동아들이다. 경남 창녕에서 났지만 초등학교부터 대구에서 자랐다. 집안은 넉넉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탈선의 핑계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쓸데 없이 자존심 강한 성격 탓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작았어요. 그래서 누가 뭐라고만 하면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싶어 주먹질을 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 레슬링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학교 레슬링부 형들의 울퉁불퉁한 몸이 멋있게 보였어요. '아, 작아도 저런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아버지께 승락을 얻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얼마 안돼 소년체전에서 메달을 따냈다. 특기생으로 고교에 진학해서도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훈련을 하면서 어깨근육과 활배근이 특히 발달했는데 그게 모두 펀치력과 직결되는 근육이지요. 지금 레슬링 덕을 톡톡이 보고 있는 셈이에요."

그러나 중학교 때 아버지가 생모(지금은 연락이 끊겼다)와 갈라서고 새어머니를 들인 뒤로 성격이 더욱 거칠어졌다. 어느 새 지역 폭력조직과도 연계가 됐다. 싸움질은 일상이 됐다. (이렇게 엇나가면 운동은 끝장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때까지는 용케 피해갔지만 고교를 졸업한 2000년 그 해 여름 그예 일이 터졌다.

대구시내 한복판에서 패싸움을 벌였는데 아무래도 상대방 여럿이 크게 다친 듯 싶었다. 며칠 뒤 집에 경찰이 들이 닥쳤다. 스스로 망가뜨린 그의 청소년기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났다. "재판정에서 우시는 부모님을 보았어요. 죽고 싶었습니다."

이듬해 봄 천안소년교도소로 이감되면서 권투를 만났다. '이대로 인생을 끝마칠 수는 없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글러브를 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제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가 겪을 바깥 세상은 더 힘들 텐데…. 최한기 코치와 담당 교도관은 세 가지를 다짐 받았다. 죽어도 후회 안 할, 주먹으로 사고 치지않을, 그리고 복싱으로 효도할 각오가 돼있는지를. 아버지도 편지를 보내 격려해 주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으니 그 길을 가는 게 좋겠다."

기필코 버젓하게 다시 태어나 부모님 가슴에 박힌 못을 빼드리리라. 하루 6시간씩의 강훈련에 미친 듯 매달렸다. 스텝과 잽, 원투 스트레이트 정도의 기초만 익힌 한달 만에 이례적으로 빨리 스파링에 붙여졌다. "어, 라이트 좋은데." 칭찬이 쏟아졌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도 주저앉고 싶을 때가 왜 없었으랴. '편하게 사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최 코치와 교도관이 일으켜 세웠다. "너는 소질이 있는 놈이야. 밖에 나가서도 전처럼 살고 싶으냐." 복싱을 시작한 지 2년쯤 됐을 때인 지난해 3월 전국아마추어신인대회에 나가 단번에 금메달을 따냈다. 10월에는 프로로 전향, 2R KO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이번에 대망의 신인왕 MVP에 올랐다.(그래서 지금까지 5전 전승이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고통을 즐기는 법도 터득했거든요." 주환은 틈만 나면 교양서적들을 읽고 교도소 내 법당에서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닦는다.

5년형을 받은 주환은 내년 7월이면 만기 출소를 한다. 최 코치는 그 때까지 최소한 한국챔피언으로까지 만들 작정이다. (그가 여기서 키워낸 지난해 신인왕 우수선수 박명환은 벌써 한국랭킹 1위에까지 올랐다) "출소 후에는 좋은 지도자에게 넘겨 세계챔피언이 되도록 도와야지요. 그럴만한 자질이 충분한 선수입니다."

노파심에 물었다. "권투까지 익혔으니 출소 후 일상에서 혹 싸움에 대한 충동이 더 커지지 않을까?" 그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링 밖에선 맞더라도 절대로 대응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참을 거에요." 그리고는 복싱을 싸움에 비하는 게 자못 억울한 듯 부연했다. "싸움은 앙심과 적개심으로 하는 것이고, 복싱은 정확하게 규칙에 따른 스포츠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근본이 완전히 달라요."

그는 요즘 늘 같은 공상을 한단다. "이 다음에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에 돌아가셨을 때를 상상해요. 햇살 좋은 논밭에 나와 두 분이 아들 며느리, 손주와 함께 음식을 펼쳐놓고 즐겁게 나눠먹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꼭 그런 날을 만들 거에요." 그의 눈자위가 언뜻 붉어졌다.

자, 그러니 먼 길을 돌아 이제 막 제대로 삶의 출발점에 선 그의 장도를 함께 지켜보자. 상처가 아문 살은 더 단단한 법이니.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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