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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9> 인공지능형 실버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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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사이언스]<9> 인공지능형 실버로봇

입력
2004.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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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만화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여기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로봇은 이제 정보기술(IT)에 버금가는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올랐다. 인공지능형 실버로봇(silver robot·노인을 위한 로봇)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문상 박사가 자신의 모습을 손수 그려보는 20년 후의 미래 속으로 따라 들어가보자.건강 체크에서 길 안내까지 척척

눈을 떠보니 창 밖이 벌써 환하다. 그대로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데 '게리보그'가 살며시 다가온다. 녀석의 한쪽 손에는 조간 신문이 들려 있고, 다른 쪽 손에는 커피 잔이 들려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을 펼쳐 들고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녀석이 타주는 모닝커피는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게리보그는 내 입맛에 맛는 커피의 양과 물의 온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신문을 읽은 다음 화장실로 가는데 게리보그가 슬며시 따라온다. 내 체온과 혈압, 맥박 등을 체크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뭐하지만 내가 변을 보는 동안 배뇨량과 간단한 변 검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녀석이 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당뇨병을 앓고 있는 L박사가 갑자기 생각난다. L박사 집에 있는 게리보그는 수시로 L박사의 혈당을 체크하고 그에 적합한 양의 인슐린을 투여한다. 만약 혈당이 급격하게 낮아지거나 높아질 경우 바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뿐만 아니라, L박사의 게리보그는 지속적으로 체크한 혈당 정보를 주치의에게 보고하고, 주의사항과 식이요법을 전달받아 식생활에 적용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자 녀석은 나에게로 다가와 약봉지를 내민다. 며칠 째 먹고 있는 몸살약을 녀석은 잊어버리지도 않고 챙긴다. 몸살 때문에 그 동안 외출을 삼가다가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선다. 동네 양로원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작정이다. 게리보그는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을 부축하는 기능까지 갖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장을 보고 올 때 무거운 짐을 들리기 위해 그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거리로 나서자 녀석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정확하게 양로원으로 향했다. 게리보그에는 기억력이 나쁜 노인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를 대비해서 디지털 지도와 위치확인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길을 찾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얼마 전에 본 신문기사에 따르면 앞으로 로봇에 대한 보행법이 제정된다고 한다. 해마다 보행 로봇이 늘어나다 보니 새로운 규칙의 적용이 필요해졌다는 얘기. 예를 들면 '길을 걸어갈 때 로봇은 인간에게 먼저 길을 양보해야 한다'거나 '지하철에서 로봇만을 위한 전용 칸을 따로 만든다' 따위의 규칙일 것이다.

부품 종류 다양해 파생 산업 풍부

게리보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는 실버로봇을 처음 개발할 당시의 일을 문득 떠올려 본다. 그때만 해도 로봇은 산업 현장에서 조립·용접 등의 단순 작업을 하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역할만을 담당했을 뿐이다. 전쟁터나 테러 현장에서 폭발물을 제거하거나 화재현장에서의 구조 활동, 대기가 없고 뜨거운 복사열에 노출되는 우주 공간이나 아주 깊은 바다 속의 작업 등은 극한작업 로봇의 몫이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판단력·사고력·감각기능 등을 갖춰 인간의 지능을 닮은 지능로봇의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로봇은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20년전 미국은 이미 인공 지능, 인터페이스 기술 등 컴퓨터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의 지능을 강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또한 일본은 메카트로닉스 기술의 강점을 바탕으로 인간과 유사한 모습과 동작을 구현하는 휴머노이드형 로봇 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2000년 11월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혼다에서는 두 발로 걷는 로봇의 최신 모델 '아시모'를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신장 120㎝, 몸무게 43㎏의 아시모는 계단이나 경사면을 자유롭게 이동했으며, 음성 명령을 알아듣고 간단한 인사말과 대화도 가능해 당시 인간과 가장 비슷한 로봇으로 인정 받았다. 미국의 세계미래학회(WFS)는 21세기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10대 기술 중의 하나로 지능형 로봇을 선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 초고속 인터넷망을 비롯한 IT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이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지능 로봇이 등장하기에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자동차 중장비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장차 로봇기술의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했다. 예컨대 보다 정교하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로봇기능을 휴대폰에 응용하거나 운전자의 행동 매커니즘을 감시하는 기술을 자동차 기능에 장착하는 것이다.

지능로봇 개발의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게리보그 같은 실버로봇이었다. 게리보그란 노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게리'와 '사이보그'의 합성어다. 실버로봇과 같은 가정용 개인 로봇은 산업용과는 달리 다품종 대량생산 체계를 요구한다. 때문에 부품 종류와 수가 많은 로봇은 파생 산업이 풍부해 향후 PC와 자동차에 필적하는 대규모 시장의 형성이 확실했다.

지금도 게리보그를 개발할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게리보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화면 속의 뉴스 앵커가 하는 말에 나는 귀가 솔깃해진다. "전 세계 로봇 제조 기술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이 곧 생산량에서도 선두를 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문 상 과학기술부 지능로봇프론티어사업단장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대 공학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능로봇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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