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호사다마였던가. 늦둥이 남늘이의 재롱에 세월 가는 줄 모르던 어느 날 국세청 세무조사라는 일대 위기를 맞았다. 1993년 연말 무렵이다. 마침 종로의 한 행사에 참석 중이던 나는 "큰일 났다"는 회사의 급보를 받았다. 사무실은 쑥대밭 일보 직전이었다.기업인에게 세무조사란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그만큼 무섭고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나는 당시 개인재산을 한 푼도 숨겨놓은 게 없었다. 비밀계좌는 물론 개인 명의 통장 하나 없었다. 부동산도 서초동 삼풍아파트 전세집이 전부였다. 나는 할 테면 해보라며 짐짓 태연했다.
그런데 회사 임직원들은 난리가 난 것처럼 허둥댔다. 한 간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일단 세무조사를 나왔으니 먼지라도 털어내려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곰곰 따져 보니 무사태평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나라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탈세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은 드물기 마련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경쟁사들의 음해가 적지 않았다. 어떤 이는 한국에서 알로에를 도입하고 재배법을 개발, 보급한 사람은 김정문이 아니라 자기라고 떠들고 다녔다. 또 문민정부라고는 하지만 국세청이 맘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던 시절이다.
국세청 직원들은 그나마 "회장님의 허락아래 자료를 압수하겠다"며 비교적 친절하게 대했다. "언제까지 하는 거냐"는 질문에는 "석 달 예정"이라고 짧게 답했다.
우리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많은 지인들이 음으로 양으로 돕기 위해 나섰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던 김동욱 한나라당 의원은 국세청 고위간부를 만나 "김 회장은 사업가가 아니라 사회사업가라고 해야 할 사람"이라며 탈세니 탈루하고는 거리가 멀다가 단언했다. 경남 통영 동향 출신인 김 의원은 지금도 10년 선배인 나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실 만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청와대 등에 근무하는 지인들도 도왔지만 김 의원을 빼고는 일일이 거명하지 않겠다. 자칫 순수한 뜻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별다른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고 그들 대부분도 순수한 마음으로 나섰지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국세청은 일단 비서실에서 관리해 온 기부금 납입 리스트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특별한 혐의를 찾지 못하자 담당국장이 "사회 환원도 좋지만 다음부터는 공개적으로 기부금을 내라"고 농을 걸 정도로 나를 이해하게 됐다. 그는 나중에 "김정문알로에는 우리 사회에서 기적의 기업이라 부를 만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결백은 밝혀졌고 세무조사도 한달 만에 흐지부지 됐다. 세무조사가 끝나자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죄가 없는데도 괜히 불안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사건을 두고 권호경 전 CBS 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언젠가 김 회장 사무실 한쪽에서 수백 개가 넘는 사회단체 파일을 본 적이 있다. 그가 돕고 있는 단체 명단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김 회장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김 회장이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비자금이라도 만들어 로비에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사회단체 후원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썼으리라고 생각하긴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결국 비서실에서 찾아낸 노트에 기록돼 있는 대로 사회운동 단체에 후원금으로 지출 된 게 확인됐다. 저간의 사정을 확인한 국세청 직원이 참 기이한 분이라며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권 사장은 "깡마른 온 몸으로 이 시대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단호히 거부해 온 김정문 회장을 탈세범 정도로 몰았다니 소도 웃을 일"이라고도 했다.
나 또한 기분이 묘했다. 기업은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는 나의 경영철학이 세상 사람들에겐 '허위와 위선'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세무조사를 통해 나의 정정당당함과 결백이 입증된 건 다행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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