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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委 "…남조선 정세보고서" 출간/"해방 정국" 소련 군정 문서 첫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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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委 "…남조선 정세보고서" 출간/"해방 정국" 소련 군정 문서 첫 번역

입력
200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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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부터 1948년까지 소련 군정이 파악한 한반도 정세와 국내 좌우익 인사 및 미군정 활동 동향을 기록한 자료집이 처음 나왔다. 미 군정 문서 발굴은 많았지만, 소련 군정 자료가 문서집 형태로 나온 적은 없어 현대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사편찬위원회는 20일 러시아 연방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 해제 문서를 수집·번역한 '소련군정문서, 남조선 정세 보고서:1946∼1947'를 출간했다. 이 자료집은 '조선에 대한 미소공동위원회 소련대표단 비서부'에 수록된 '남조선 정세 보고서' 시리즈로 45∼48년 소련 군정 기간 문서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사료 가치가 높은 것이다. 러시아 연방군 총사령부 역사문서관리국은 이 문서들을 2001년 3월 처음 공개했다. 서울대 정용욱 교수는 "미 군정 자료와 비교 검토할 경우 당시 미국과 소련의 대 한반도 정책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해방 정국 지도자 행태 세밀히 묘사

자료집은 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46년 1, 2월 서울에서 열린 미소 양군 사령부 대표자회의와 46, 47년 두 차례 소집된 미소공동위원회에 파견된 소련대표단의 활동과 관련해 생산·접수된 방대한 문서자료의 일부이다. 자료집에는 정세보고형식의 구두정보보고와 신문자료, 방송 녹취록, 정당·사회 단체의 각종 답신서 및 성명서·서한, 당시 남북한의 정치 정세와 경제 상황에 대한 각종 보고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남조선 정세 보고서'는 남조선 좌익 진영의 지도자 역할을 한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 지도부의 정세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높다.

보고서들은 당시 언론보도 등 공개자료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여운형, 김규식 등 중간파 정치지도자들과 공산당 내 반대파 활동가들의 은밀한 행태 및 일상생활도 보여주고 있다. 또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이 남조선의 여러 정당·사회 단체에서 광범위하게 하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던 사실도 드러난다. 미 군정청에까지 조직을 운영한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들은 김삼룡, 이주하, 이승엽, 이현상 등으로 대표되는 남로당 서울 지도부가 서면이나 구두로 소련 군정 지도부에 전달한 것이다. 가끔 '치혼 이바노비치'라는 러시아 이름이나 '노인'이라는 별명으로 등장하는 보고자는 남로당 해주 지도부를 이끌던 박헌영으로 추정된다.

김구-이승만 말다툼 뒤 격투까지

자료집의 '구두 정보 보고 No. C―5, 1946년 3월27일'에 따르면 김구와 이승만의 갈등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3월12일 김구는 이승만을 방문하여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 김구―당신의 지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오? 이승만―아무것도 모르면 잠자코 계시오. 김구―당신은 많이 알아서 그런 일을 했소? 이승만―테러분자들의 두목이 무슨 할 말이 있소? 김구―나는 테러기술을 배웠지만 당신은 할 줄도 모르면서 살인을 하고 있지 않소. 광산을 판 이유가 뭐요? 이승만―조선의 권력을 판 이유는 뭐요? 김구―당신이 나를 테러분자들의 두목이라고 했소? 알았소. 그 말에 책임을 지시오.' 구두 보고는 이어 '다른 자료에 의하면 그날 저녁 김구와 이승만이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김구가 이승만을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앉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헌영-여운형 미소공위 대책 논의

역시 구두 정보 보고 자료에 따르면 박헌영은 46년 4월15일 12시 여운형을 방문했고,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대표단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를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이미 국무부에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 대한 답변이 국무부로부터 입수되는 즉시 미국 대표단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사업을 즉각 중지시킬 계획이라 한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고 난 다음에 미군 당국은 남조선에 정부 조직을 수립할 것이고, 이와 동시에 단독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 한다. 그 후 북조선에서 우익 조직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강력한 탄압을 가해 공산당과 인민당을 파괴할 것이라 한다.…" 여운형은 이어 박헌영에게 미소공동위 실패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만일 탄압이 시작된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물었다.

이밖에도 미소공동위 1차 회의가 열리고 일주일 뒤 남로당 허헌 초대위원장은 김일성 개인비서 황병옥을 만나 대통령 후보로 누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미국인들은 후보자로 이승만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우리 진영에서 후보자를 천거한다면 가장 적합한 사람은 여운형이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는 해방 정국에서 복잡하게 집행된 좌우 갈등의 이면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소련군정문서를 해외사료총서 시리즈로 계속 발간할 계획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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