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향후 씨티측의 국내 영업 전략에 금융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1위 은행'과 피할 수 없는 격전을 치러야 할 국내 은행들은 씨티측이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춘 한미은행을 인수하면 국내 우량 고객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칼라일 등과의 지분 인수 본계약 →공개 매수 통해 지분 100% 인수 →상장 폐지 →합병 통해 완전 자회사 운영.' 향후 예상되는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시나리오다. 지금까지 씨티은행이 미국외 지역에서 은행을 사들일 때는 대부분 이런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을 별도의 브랜드로 운영하면서 전략을 차별화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 씨티은행은 2001년 멕시코 바나멕스 은행을 125억달러(15조원 가량)에 인수할 당시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씨티그룹 주식과 맞교환한 뒤 소각했다.
대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기존 조직을 재편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한 시중은행장은 "외국 은행의 특성상 기존 조직은 예금과 대출 등 소매 금융만 전담하고 투자은행(IB) 업무나 자산운용 부문은 별도로 떼 내 따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는 1990년대부터 소매금융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선진 기법을 무기로 소매 전문 은행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영업 전략과도 맥을 같이 한다. 67년 기업 금융으로 국내에 첫 발을 내디딘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89년 국내 최초로 프라이빗뱅킹 서비스를 도입한 데 이어 90년 현금자동입출금(ATM)기 서비스, 91년 VIP 고객을 위한 씨티골드 서비스 등 선진 금융 기법을 국내에 잇따라 선을 보였다.
씨티은행은 지금까지 국내 영업에서도 볼 수 있듯 공격적이기 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춰가는 스타일. 하지만 서울지점 개설 이후 이미 37년간 국내 영업을 하면서 시장 분석을 충분히 끝낸 만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란 분석도 많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기존 서울지점이 그랬던 것처럼 10∼20%의 우량 고객을 타깃으로 집중 공략에 나설 것"이라며 "이제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만큼 파급 효과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다양한 금융 상품과 1대 1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무기로 본격적인 우량 고객 흡수에 나선다면 거액 뭉칫돈도 이동할 수 있다. 전세계 100여국에 3,500개에 달하는 영업망이 국내 은행 지점과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경우 국내 시중은행들의 우량 고객 이탈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 인가를 얻어 국내 예금자에게 전세계 씨티은행 지점을 통해 달러 현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위력은 배가될 수 있다"며 "국내은행들이 외환 위기 이후 규모를 키우고 선진 금융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막강한 자본과 네트워크의 위력 앞에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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