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페이트만 등 엮음·이남석 등 옮김 이후 발행·1만9,000원
최근 여·야 정치권이 도입키로 합의해 논란이 일고 있는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유독 여성에게만 문턱이 높은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정치는 철저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성이 참정권을 얻어낸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정치사상사'는 여성과 정치가 양립하지 못하는 지적 전통의 원류가 된 플라톤부터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2,500여년간 서구 정치사상의 흐름을 지배해온 사상가 14명을 새롭게 읽어낸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로크, 루소, 울스턴크래프트, 헤겔, 마르크스, 밀, 롤즈, 보봐르, 푸코, 아렌트, 하버마스 등의 사상을 각각 분석한 논문 14편을 묶다 보니 필진들의 시각은 페미니즘의 지형 속에서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편자 캐럴 페이트만(미국 UCLA 정치학과 교수)과 린든 쉐인리(미국 바사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사상사 고전들의 남성중심적 시각에 숨겨진 페미니즘의 씨앗을 해독해내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한 플라톤에게서 여성도 이상국가의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한 혁명적 인식을 읽어낸다. 로크를 여성의 천부적 자유와 평등을 옹호한 맹아적 형태의 평등권 페미니스트로 재해석하는 등 고전의 틈새를 파고 들어간다.
동시에 진보적 사상가들의 한계도 날카롭게 파헤쳐진다.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기독교를 중심에 두는 기성 시각의 테두리에 갇혀버린 보봐르의 페미니즘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계급과 인종, 종교를 초월하는 여성의 보편적 연대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연결 고리를 찾지 않은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에 대한 비판도 가해진다.
이 책의 필진은 전통적 정치 이론이 내포한 여성 혐오증을 폭로하는데 치중한 초기 페미니스트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무조건적 평등보다는 남녀간 '차이'와 더불어 여성 내부의 '차이'까지 승인하는, 차이의 정치학도 제시된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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