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셋 중 한 명이 읽은 책은 무얼까? 그런 책이 있긴 있을까?' '실미도'는 1,000만 관객이 들어 15세 이상 관람가 기준으로 셋 중 한 사람이 봤다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기록을 깨고도 남을 위세다.단행본출판 시장에도 1,000만 돌파의 신화가 없는 건 아니다. 출간 16년째를 맞은 이문열의 '삼국지'가 1,500만 권 판매에 육박하고 있다. 유일하다. 하지만 이 책은 10권짜리 전질이 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작품 당 판매는 150만 수준이다.
관객이나 독자의 수가 작품의 질까지 보장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한국영화의 성장이 대작 위주라는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계가 불황을 탓하며 의기소침한 사이, 영화계는 한 발 더 도약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문화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영화에서처럼 자본을 끌어 모아, 상업주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출판계에는 그보다 작지만 멀리 내다보고 기초부터 다져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사람을 아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작가와 번역자를 못 잡아 쩔쩔매다가도, 책이 나와 제법 팔리면 인세와 번역료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 출판사가 적지 않다. 의욕 있는 편집자들이 박봉에 시달린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와 배우가 아무리 좋다 한들 감독 없는 걸작은 없다.
편집자들이 자주 찾는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 본 글이 기억 난다. '연봉협상이란거 너무 어렵군요. 나의 능력은 그대로인데, 대기업에 있을 때와 출판업계에 있을 때 연봉이 달라지니. 2,000이라고 말하고 나서 부끄러웠습니다. 나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서….' 3월을 전후해 여러 출판사에서 연봉협상이 있다. 책이 좋아 출판 일 자청한 젊은 감독들에게 희망 한번 줘 보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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