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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뻐꾸기 정치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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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하여 "뻐꾸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이라크 파병 동의안의 불발로 국회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책임은 국회가 지게 했다는 것이다.뻐꾸기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면서도 아름답지만 행실은 얌체같고 배은망덕하다.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종달새 같은 다른 새의 둥지를 찾아 알을 낳는다. 가짜 어미의 품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가짜 어미가 낳은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죽여버린다. 그리고 가짜 어미가 잡아다 주는 벌레를 먹으며 자라다가 날 수 있게 되면 근처 나뭇가지에서 기다리는 진짜 어미에게 돌아가 버린다.

노 대통령을 이렇게 옹호할 수 있다. "의원님, 법안이나 동의안이라는 것이 결국 국회가 품어서 부화해 줘야 생명력을 얻는 것이 아닙니까. 뻐꾸기가 알을 부화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이 대통령이 스스로 법안을 발효할 수 없는 것이 헌법의 대원칙입니다. 그런데 국회가 법안을 제대로 품어주지 않았으니 그건 당연히 국회의 책임입니다. 여소야대의 국회이니 야당에 더 많은 비난이 돌아가는 것도 맞고요."

그런데 최근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상황으로 야기된 결과를 보면, 이 야당 의원의 '뻐꾸기 정치론'은 재미있는 풍자다. 검찰의 정치자금 비리 수사로 비난의 대상이 된 국회는 FTA 비준안 파동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현역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최악에 이르고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사실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대 국회 로비의 선봉에 서 있어야 할 경제부총리는 총선 출마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모두들 총선 올인에 정신이 팔렸던 것 같다. 국회는 비난 여론을 온통 뒤집어쓰고야 의안을 처리했다.

이것은 총선을 앞둔 노 대통령에게 여간 큰 정치적 전과가 아니다. 대통령의 염원은 그가 입당할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정치판이 확 바뀌는 것이다. 현역 의원 혐오 분위기가 확산되면 우리당이 총선에서 크게 약진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정치적 테크닉의 소산인지 운세인지는 모르나 노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러나 초당적 시야로 보면 자유무역협정과 파병 동의안을 놓고 벌어진 해프닝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들 의안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대외 정책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지도자는 일단 방침이 정해진 정책에 대해서는 국익에 부합되도록 책임 있게 추진해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FTA나 파병안은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이면 누가 보아도 민감한 사안이다. 비슷한 이슈를 놓고는 세계 어느 나라든 그런 진통을 겪는다. 반대가 심한 지역의 유권자를 설득하면서 그 지역 국회의원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정치를 부드럽게 만들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눈앞의 비난을 무릅쓰고 백년 후의 국익을 바라보며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던 미국의 윌리엄 스워드 국무장관의 일화를 떠올려 본다. 스워드가 1867년 제정 러시아와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 매입 계약을 체결했을 때 국회의원들은 '국무장관의 냉장고로 쓰라'고 힐난했고 신문도 비난 일색이었다. 궁지에 몰린 스워드가 의회와 신문을 설득했던 에피소드는 미국 정치의 야화로 전해진다. 오늘날 알래스카가 없었다면 미국은 태평양을 내해처럼 쓰는 전략적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이라도 국가의 주요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해 나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

김 수 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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