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의 괴로움은 대부분 글 쓰는 이들에게서 온다. 무엇보다 글도 못 쓰면서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어하는 이와 마주칠 때 괴롭다. 맛깔스러운 글을 욕심 내는 게 아니다. 머리 속의 생각을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드러낼 줄만 알아도 좋으련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원고를 들이미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글이 전하는 주장이나 소재마저 남다른 점이 없는 '하품'의 필자라면 주저 없이 손을 내젓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문제다. 내용은 있으되 표현할 줄 모르는 '중품'의 필자를 만났을 때, 그가 어지럽게 쏟아 놓은 구슬을 다듬고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탄생시키는 고된 노동은 온전히 편집인의 몫이 된다.
책 머리말에 이따금 보이는 "아무개 출판사 아무개 씨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말은 지은이의 진심 어린 고백일 때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날이 바치는 편집인의 기도는 "가치 있는 내용을 유려한 글 솜씨에 담아내는 '상품'의 필자를 만나게 해 주십사"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글만 좋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편집인들이 감던 머리칼을 움켜쥔 채 달려 나가 맞을 만한 '상품'의 필자는 삶이 온전히 글이 되는 이들이다. 삶과 글이 분열된 채 허명과 돈에 취해 있는 잔챙이들 틈에서 성찰과 사색 그리고 아름다운 열정이 글줄마다 살아 있는 '진짜'를 발견했을 때, 편집인의 고된 노동은 환희로 바뀐다.
책을 이루는 글줄 하나하나에는 독자들이 모르는 편집인의 고뇌와 땀방울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 만큼 수많은 글줄이 이어져 책이 되는 사이에 필자와 편집인은 친구가 된다. 그래서 언제, 어느 구석에 떨어져도 반갑게 차 한 잔 나눌 친구가 있어야 진정한 편집인이라고 한다. 책 만드는 사람의 즐거움도 거개가 글 쓰는 이들에게서 온다.
한 필 훈 길벗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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