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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제일모직·LG·코오롱 '빅3' 친정체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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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제일모직·LG·코오롱 '빅3' 친정체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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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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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패션명가들의 가족경영체제가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국내 패션계의 ‘빅3’로 불리는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패션이 본격적인 오너 경영시대에 돌입, 패션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있다.LG패션은 구본걸 전 LG산전 관리본부 본부장을 1월1일자로 ㈜LG상사 패션&어패럴부문 부문장(부사장)으로 임명,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구본걸 부사장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의 장남으로 LG상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녀 이서현씨가 제일모직내 삼성패션연구소의 부장으로 재직중인데 이어 지난달 있었던 그룹 임원진 인사에서 이서현씨의 배우자인 둘째 사위 김재열씨를 상무로 승진시켜 후계구도를 명확히 했다.

패션계 매출 규모 1,2위를 달리는 제일모직과 LG패션의 친정체제 구축은 이미 이웅열 그룹회장의 주도아래 하이패션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코오롱패션의 움직임과 더불어 국내 패션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LG패션 구본걸 부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MBA를 딴 엘리트. 일찍 아버지를 여읜 조카에 대한 구 명예회장의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실적위주의 공격경영 스타일로 업계에서는 LG패션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내 한 관계자는 “구 사장의 ‘실적’ 드라이브가 워낙 강해 일부에서 불만도 나오지만 그만큼 잘해보겠다는 의지로 읽혀서 조직이 새롭게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 부사장은 임명된 지 한달도 안된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에 있는 LG패션 생산단지를 현지 시찰했으며, 브랜드 팀장은 물론 말단 디자이너 및 사무직원까지 직접 일대일로 면담하고 있다.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붓는 스타일이라 업무보고에 들어간 직원들 마다 혀를 내두르고 나온다고. 일체의 언론접촉을 삼가면서도 이달 말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소재 전시회 ‘프리미에르 비종’에 참관하는 것은 물론 이탈리아 피혁제품 생산업체 시찰에 나서는 등 패션업계 파악에 빠른 행보를 보이고있다.

특히 명품지향 브랜드인 제덴과 알베로는 거의 매일 업무보고를 챙기는 데다 사내 임직원 회의를 통해 ‘만명이 원해도 천명한테만 파는 브랜드’ ‘수익이 나는 브랜드’를 주문, LG패션이 친정체제를 통해 본격적인 고급화 전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있다.

제일모직은 올해 임원진 인사에서 김재열씨가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담당 상무로 올라선 것과 함께 패션부문 원대연 사장이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삼성캐피탈의 제진훈 사장이 선임된 것을 본격적인 ‘이서현 체제로의 진입을 위한 초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그룹내에서 재무통으로 불리는 제 사장의 임명은 장기적으로는 제일모직의 계열분리를 위한 길닦기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이서현 부장은 그동안 경영사장을 따로 두고 본인은 디자인 부문을 집중적으로 챙기겠다는 뜻을 표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전문 CEO’로 불렸던 삼성물산 출신의 원대연 사장이 수직적 체제에 익숙하고 경영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라면 신임 제 사장은 제일모직 출신으로 수평적인 팀제 중심인데다 관리와 지원할 뿐 디자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씨의 경영구상에 더 부합한다는 관측도 있다.

사내 한 인사는 “패션기업의 성패는 경영과 디자인이 서로 독립적이고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한다는 룰이 적용된 인사”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이서현-디자인, 김재열-경영’ 체제가 자연스레 자리잡지않겠냐”고 전망했다.

이서현 부장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제일모직의 행보에 있어서 오너의 입김은 막강하다. 2002년 일본 디자이너브랜드 이세이미야케 수입, 디자이너 정구호씨와 이탈리아 고급부틱 루이자 베까리아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하던 이정민씨 영입 등은 원대연 사장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으나 막후에는 이 부장이 있었다는 것이 패션계의 정설이다.

이세이미야케의 경우 국내 한 패션잡지와의 화보촬영장에까지 이 부장이 직접 찾아와 관계자들을 격려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이 부장은 외부에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사내에선 일선 디자이너들과 구내 식당에서 점심간담회도 자주 할 정도로 소탈하며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오너의 패션기업 친정체제를 보는 패션계의 시각은 제 각각이다. ‘귀족적’ 풍토에서 자라나 한국적 현실에 대한 고려나 패션사업에 대한 뚜렷한 비전 없이 명품지향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그 하나. 크리스천 라크르와 옴므와 레이디, 마크 제이콥스(코오롱), 이세이 미야케와 케네스콜(제일모직) 등 해외 유명브랜드들을 속속 들여오는 등 ‘대기업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비난받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패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수업’을 거친 오너체제는 전략만 아닌 ‘실탄’을 통해 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확실한 투자가 가능한 오너체제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패션시장에서 이전투구하느니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은 없어도 해외시장 개척 등 장기투자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제일모직의 경우 이탈리아 현지법인을 통해 생산판매할 예정인 여성복 브랜드 런칭이 1년 이상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고도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오너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패션계 한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하우스의 경우 대부분 오너경영, 가족경영 체제로 성공하고 있다. 역사와 철학을 담은 명품 브랜드가 탄생하기위해서는 이를 꾸준히 지켜낼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 패션의 화려함과 당장의 실익만 탐하는 ‘낙하산’ 오너가 아닌, ‘준비된’ 오너체제가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입력시간 : 2004-02-1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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