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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황우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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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황우석 교수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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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휘날리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금의환향'했다. 13일 사이언스지 기자회견부터 16일 미 국가과학진흥회(AAAS) 학술대회의 피날레 강연까지, 황 교수가 미 시애틀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생명공학은 세계적 명성을 구가했다. 사인 대열이 줄을 지었고 사람들은 그를 '히어로'라 불렀다. 그리고 귀국 다음날인 19일 오전 6시30분 황 교수는 여느 때처럼 실험실을 찾아 촌음을 다투는 연구경쟁에 다시 뛰어들었다. 18일 인천국제공항의 합동기자회견과 심야까지 이어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황 교수의 성공과 실패를 들었다.―이번 연구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이다. 미 강연에서도 특별히 고마움을 표했다. 청중들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고 하더라. 중국에선 500달러, 미 메사추세츠주에선 4,500달러에 난자가 매매되는데, 처음부터 난자를 산다는 생각은 아예 배제했다. 그런 난자엔 탐구정신과 열정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세포질을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생산을 연구하겠다. 그러면 난자가 필요없고, 인간복제도 불가능해 윤리적 문제도 해결된다."

―화려한 성공 뒤엔 수백, 수천번의 실패가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정말 힘들었다. 해도 해도 되지 않을 땐 피가 말랐다. 연구팀 모두 '선생님, 이거 원래 안 되는 겁니다'라고 말했을 땐 늘 긍정적이던 나도 흔들렸다. 하지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실험실이 떠오르고, 내가 꼭 일으켜 세우고 싶은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된다, 반드시 된다, 내가 된다면 되는 거다!' 주문을 외우고 다시 실험실로 갔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 앞에서 성과를 발표하는 광경을 그렸고 그것이 현실이 됐다."

―앞으로 공동연구 계획은?

"콧대 높던 학자들로부터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학회장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로저 피터슨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먼저 저녁을 먹자며 공동 연구를 제안해왔다. 2만마리의 원숭이를 공굴리듯 실험하는 제랄드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팀은 가장 중요한 공동연구자가 될 것이다. 세포특성 연구의 권위자인 한스 쉘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도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와 협의를 거쳐 이달 말이면 연구협정 체결이 될 것이다. 미국쪽에선 '돈은 얼마든지 대겠다'고 하는데 꼭 반갑지는 않다. 자칫 연구성과와 이권이 넘어갈 우려가 있다."

―외국 연구자들이 노벨상 수상감이라고 했는데.

"나의 우호 세력들이 나서겠다고 하더라. 이번 연구가 의학적 치료에 결정적 의미를 가졌다는 점이 규명된다면 유력한 노벨상 후보라고 말했다. 내가 수상후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쯤 후배 과학자가 받도록 하고싶다."

―한국의 간판 과학자로서 사회적 역할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일단 실험실로 잠행하겠다. 단 청소년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는 기회가 필요하다면 그것만큼은 하겠다."

―수많은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준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한 개인적 소회가 있다면.

"있는 자는 병을 고치고 없는 자는 마음의 고통까지 얻는,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이번 연구가 인류 공동선에 기여했으면 한다. 특허로 생기는 경제적 수입도 가난한 병자를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 특허권은 국가 소유니 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황 교수는 무엇을 얻나.

"명예가 있지 않나. 그것도 나의 명예라기보다 대한민국의 명예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바이오의 정상에 오르리라는 것은 나의 신앙이었다. 스카우트돼 외국에 나갈 생각은 0%다. 그러면 프로 선수처럼 고액 연봉은 받겠지만 거기서도 지금처럼 새벽 6시부터 연구원들과 지지고 볶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이 훨씬 보람 있다."

―집으로 돌아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부인과 포도주라도?

"(크게 웃으며) 그런 거 없다. 기자회견만 없었어도 귀국하자마자 실험실로 갔을 것이다. 외국 출장에서 돌아와 한번도 집으로 직행한 적이 없다. 아내도 그러려니 한다. 그동안 애들에게 미안했는데 이제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한다."

―아이들도 과학자로 키우나.

"애비의 삶을 닮고 싶었겠나. 큰 아들은 미국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둘째 아들(불문학 전공)은 막 제대했다."

―정부와 주변에서 해 줄 일은.

"우리를 조용히 실험실에 내버려 두라. 이제 잠수하겠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무슨 특허 있나

이미 동물복제 연구에서 난자를 눌러짜 핵을 분리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는 황우석 교수는 이번 연구과정에서 또 다른 독창적 기술을 개발, 전세계에 특허를 출원했다.

먼저 체세포 핵을 난자에 이식한 뒤 시간을 두었다가 화학물질을 넣음으로써 세포 융합이 잘 되도록 하는 기술이다. 또 배반포기까지 자라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체 개발 배양액도 특허다. 국내외 다른 연구팀이 4∼6세포기에서 손을 든 연구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독자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특허는 복제된 인간배아줄기세포 자체에 대한 물질특허. 즉 어느 나라 누구든 체세포 복제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상업화할 경우 황 교수팀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 연구가 10년쯤 지나 파킨슨병,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료에 쓰이기 시작한다면 특허료로 인한 국부 창출은 천문학적 액수가 된다.

특허가 등록되기까진 약 2년이 걸린다. 특허 지분의 60%는 서울대 소유이며 40%는 일부 연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황 교수 자신의 지분은 전혀 없다.

/김희원기자

● 어떤 연구 했나

국내 최초의 시험관 송아지부터 세계를 놀라게 한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에 이르기까지, 황우석 교수의 지난 10년은 한국 생명공학의 산 역사다.

1993년 11월 홀스타인 암소의 난자에 한우 정자를 인공 수정시켜 탄생한 국내 최초 시험관 송아지는 예고편일뿐이었다. 95년 2월 황 교수는 수정란 복제 방식으로 우유 생산량이 일반 젖소의 2배나 높은 '슈퍼소'를 만들어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거둔 성공이었다.

그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은 99년 2월. 영국 복제양 돌리와 같은 체세포 복제 방법으로 일궈낸 복제 젖소 영롱이와 복제 한우 진이의 탄생은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수준을 단숨에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영롱이는 2001년 4월 자연 교배를 통해 건강한 송아지를 출산, 황 교수팀에게 다시 한번 경사를 안겼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하려던 시도는 아직까지 숙제로 남아있다.

2000년 황 교수는 소에서 인간으로 눈을 돌렸다. 8월 남성에게 채취한 체세포를 복제한 후 배반포기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2002년 8월에는 사람에게 장기이식이 가능한 형질전환 돼지를 복제하는데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하루만에 숨졌다. 지난해 말에도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무균 처리한 미니돼지 6마리를 탄생시켰으나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모두 죽었다.

황 교수는 지난해 12월 광우병을 일으키지 않는 변이 단백질을 수정란에 과다 발현시킨 후 대리모에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광우병 내성소'로 주목을 받았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으로 세계 과학계의 찬사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후였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황우석 교수는

195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 수의학과와 동 대학원을 거쳐 82년 서울대에서 임상수의학 박사를 받았다. 84년부터 2년간 일본 홋카이도대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86년부터 서울대 수의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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