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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노사]<7> 옛말이 된 "독일노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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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노사]<7> 옛말이 된 "독일노조 신화"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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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오후3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중심에 위치한 구직센터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층 정보센터에서 만난 브레쩌(50)씨는 "10년 전에 다니던 유통회사가 부도가 나 직장을 잃은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며 "다행히 취업교육을 받고 있지만 언제 취직이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도 이제는 노조가 내 직장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막강했던 독일노조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세계 최강의 노조인 독일 금속노조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파업에 실패한데다 독일 정부가 노동개혁 등을 위해 지난해 발표한 '아젠다 2010'의 시행으로 노조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자들이 특정 산업 내 모든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산별 교섭제도에서 벗어나 개별사업장별로 직접교섭을 선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노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아젠다 2010' 올해부터 시행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안한 '노동·사회분야 개혁안'('아젠다 2010')이 여야의 치열한 공방 끝에 올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경제성장률이 2002년 0.2%에서 2003년에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고 실업자수가 430만명 선을 넘어서는 등 통일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로 추진하고 있는 것.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노동자 해고 규제 완화, 실업수당 삭감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포함돼 있다.

독일노총(DGB)은 "해고방지법(해고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이 노동자 5인 이하에서 10인 이하로 확대되면 여기에 전체 독일 기업의 80%가 해당돼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했지만 경제난 극복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사용자는 정부부담 축소 및 개인책임을 강조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를 위해 통과된 이 개혁안에 따라 10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최소한의 보상을 하거나 통지만으로도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됐다. 5인 이하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6주 이상의 사전통지를 해야만 해고 할 수 있었던 조건을 대폭 확대해 10인 이하도 해고법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실직자의 구직활동을 촉진하고 가계 안정을 위해 지급하던 실업급여도 단축됐다. 현행 18개월에서 12개월로, 55세 이상은 32개월에서 18개월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축소된 것. 게다가 실업자의 경우 노조가 정하는 임금 가이드라인 이하라도 받아들이도록 강제됐으며,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각종 복지혜택이 삭감된다.

막강했던 독일노조

독일노조는 그 동안 해고법(1969년) 하에서 막강한 조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용자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었고, 부당 해고 시에는 3주 이내에 노동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등 법적 보호를 바탕으로 임금협상 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개별사업장에서 노조에만 가입하면 산별노조의 임금협상에 따라 근로조건이 결정돼, 정규직과 큰 차별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각종 사회복지 부담을 사용자측이 부담하고 있는 상태에서 해고법에 따라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없어 생산량이 늘어나도 사용자측은 추가인력 채용을 기피하는 등 경제에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지키기로 한 '마스트리히트 재정건전화 협약'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금·의료보험 개혁 뿐만 아니라 '10인 이하 사업장 해고법 제외'라는 정부의 노동개혁 가이드라인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됐다.

산별교섭에서 개별사업장별 교섭으로

사업장별 노조 활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산별노조로 재편하려는 한국 노동계의 시도와는 달리 산별교섭을 통해 '무적'을 자랑하던 독일노조에서는 노사관계의 분권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금속노조의 파업 실패 이후 최근 산별보다는 사업장별 교섭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산별노조 측은 "개별기업의 사정에 따라 신축적으로 임금교섭안을 타결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은 정부와 기업이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결과"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오히려 개별사업장 노동자측이 임금단일안을 만들어 산별 내 모든 기업에 적용하는 획일적인 산별 교섭제도에 벗어나, 신축적이고 유연한 교섭구조를 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아직까지는 단체교섭이 지구별로 이뤄지는 중앙집중화 방식을 대부분 선호하고는 있지만, 개별 사용자들이 단체협약법과 사업장기본법에 따라 각 사업장에 설치돼 있는 근로자평의회를 통해 얼마든지 임금교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장별 교섭을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미 구 동독지역의 노사는 대부분 개별교섭을 선택하고 있어 산별노조의 설득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

금속산업경영자협회(Gesamtmetal) 마르틴 로이츠 홍보담당관은 "대부분 독일은 중앙노조를 통해 임금협상을 했었지만 현재는 노동유연화를 위해 개별사업장내의 협상이 더욱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아젠다 2010이 시행돼 어느 정도 정착되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크푸르트=고성호기자 sungho@hk.co.kr

● "아젠다 2010"추진 일지

2003년 3월 '아젠다 2010' 개혁안 발표

2003년 6∼7월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 10개 개혁안 압도적 지지

2003년 10월 야당인 기민연합, 개혁안 중 사회보장개혁안

내부승인하원(여당 다수), 개혁안 가결

2003년 11월 상원(야당 다수), 개혁안 부결

2003년 12월 재협상위원회에 회부돼 여야합의로 수정

10개 개혁안 상·하원 최종통과

2004년 1월 10개 개혁안 시행

■ 독일의 산별교섭

자율교섭원칙을 지키고 있는 독일의 노조와 사용자단체는 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교섭 전부터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각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해당산업의 시장조건을 면밀하게 파악, 충분한 토론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명분을 얻기 위해 국민들을 상대로 여론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산별교섭이 주로 지구별로 이뤄지기 때문에 노사 양측은 해당지역에서 위원을 선출해 교섭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마련된 협상전략을 바탕으로 협상안을 작성한다.

그 후 의사결정기관의 승인을 얻어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면 곧바로 노사 양측이 협상안에 서명해 교섭절차를 마무리 짖게 된다.

단체협약법과 사업장기본법에 따라 노조는 얼마든지 산별노조와 개별사업장별로 구성돼 있는 근로자평의회를 통해 교섭에 참여할 수 있으며 사용자도 사용자단체에 가입해 참여하거나 개별적으로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교섭 내용은 보통 1년 단위로 협상되는 임금뿐만 아니라 휴가기간 등 장기간 맺어지는 근로조건이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다.

과거의 협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교섭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법률적인 규정은 없지만 보통 노조의 규약으로 정해진 '평화준수의무'에 따라 협약 만료 후 보통 4주 동안 평화적인 교섭을 실시한다.

이 기간이 끝난 후에는 조합원의 투표에 따라 파업을 할 수 있으며 파업장은 개별사업장 중 한개 또는 여러개가 될 수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조합원의 75% 찬성이 있어야만 파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조가 소속돼 있는 사업장을 무작위로 선택해 파업을 하게 되면, 사용자는 그 밖의 사업장에 대해서는 방어적 차원에서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

원만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노사는 파업대신 일반적으로 조정위원회에 알선·조정을 신청, 2일 이내에 알선절차에 참여한 후 3일 이내에 조정위원회 의장이 위원회를 소집해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면 6일 이내에 노사 양측은 수용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국민대 법대 이광택 교수는 "자율교섭을 원칙으로 하는 독일의 노사는 과거 협상안을 폐기시킨 후 장기적인 파업을 통해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며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합의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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