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초등생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박모(15·부천 A중 2년)군이 19일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자 경찰이 사건 조기 해결 욕심 때문에 10대의 어설픈 진술에만 집착, 박군을 무리하게 범인으로 몰아가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박군과 박군 가족은 물론, 경찰 조사를 받은 박군 친구들조차 조사과정에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증언해 경찰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관련자들을 조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허점 투성이 경찰 수사
경찰은 12일 박군이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제보를 받고 5일 동안 박군 주변을 수사했다. 그러나 별다른 물증이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17일 낮 박군을 임의동행, 조사한 끝에 범행을 자백받고 18일 오전 2시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군의 알리바이, 목격자와의 대질은 물론, 피살 초등생의 손가락 매듭 등 살해 과정 등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언론에 박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발표했다.
박군의 진술 역시 "14일 오후 9시께 '뱀을 보러가자'고 두 어린이를 산으로 유혹했는데 돈도 없고 무섭다고 울어대 순간적으로 살해했다"는, 일반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또 신장 165㎝에 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박군의 신체적 특징은 '170㎝의 키에 짧은 머리를 한 30대'라는 기존 목격자 진술과 배치되는 것인데도 무시됐다.
경찰은 18일 뒤늦게 초등생의 시신에 찍힌 운동화 자국과 비교한다며 박군 집에서 신발을 압수했지만 박군의 형(21)은 "내 것보다 동생 신발이 더 크고 경찰이 압수해간 운동화는 동생이 신지 않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경찰의 무리한 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군과 함께 조사를 받은 친구 박모군은 "17일 정오부터 18일 새벽 5시까지 잠을 제대로 못잔 채 조사를 받았다"고 말해 강압수사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박군 가족들도 "부모 동의도 없이 어린 아이를 데려다 겁을 줘 허위 자백을 유도했다"며 인권위에 제소키로 하는 등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박군이 불과 두, 세살 어린 두 소년을 단번에 제압하기 어렵고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벗기는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서둘러 박군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결국 이날 박군이 "경찰이 형의 운동화를 의심해 수사하는 것을 알고 형이 의심 받을 것 같아 두려워 자백했다"고 진술을 번복하자 석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강압수사는 없었으며, 보강수사가 필요한 상황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군이 밝힌 알리바이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고, 밝힐수는 없으나 박군 진술에서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발견된 것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고 말하는 등 여지를 남기고 있다.
/부천=이범구기자 goguma@hk.co.kr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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