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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추어탕, 입맛은 절대 안 흐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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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추어탕, 입맛은 절대 안 흐린대요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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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아니면 추탕?, 거기에다 남원식, 원주식, 아니면 서울식?, 복잡하기 짝이 없다. 어디로 가서 뭘 먹어야 하나? 결론은 ‘다 먹어봐야 한다’ 이다.겨우내 허해진 듯한 몸을 추스르는데 그만인 추어탕! 여름 한 철 보신탕이 보양식을 평정했다면 차가운 계절에는 추어탕이 제격이다. 진한 탕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 먹으면 쌓였던 피로가 눈녹 듯 사라진다.

걸쭉한 국물에 구수한 맛이 일품인 추어탕은 지방마다 끓이는 방법이 다르다. 크게 남도식, 원주식, 그리고 서울식 등 세가지. 국물 맛은 물론, 양념과 재료도 제각각이다. 세가지 추어탕 맛은 어떻게 다르고 조리비법은 무얼까?

아버지 김홍규(오른쪽)씨와 장남 범수(가운데), 4남 지찬씨 3부자가 추어숙회 추어튀김 추어탕 등 추어 요리를 한 상 가득 놓고 조리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추어탕을 잘 끓이기로 소문난 할아버지 김홍귀(65)씨와 아들 범수(40), 지찬(36)씨로부터 남도식 추어탕 이야기를 들어 봤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더 많이 추어탕을 끓여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김홍귀씨는 이른바 ‘추어탕 달인’. 두 아들도 비법을 전수받아 추어탕집을 운영하고 있다.

커다란 여행가방에서 추어탕 관련자료만 한 아름 꺼내보이는 그가 추어탕을 맛있게 끓이는 법과 맛있게 먹는 요령을 공개했다. 추어탕을 세배로 즐기는 맛 탐험을 떠나 보자.

김범수씨(장남) 남들이 보면 여행 떠나시는 줄 알겠어요. (아버지 김홍귀씨가 여행가방에서 각종 자료들을 꺼내 뒤적거린다. 모두 추어탕 관련 자료와 정리 노트들이다)

김홍귀씨(아버지) 추어탕은 뚝배기 안의 고기 살점이 우물우물 돌아다니는 듯 해야 맛있지. 그러려면 미꾸라지를 믹서에 갈지 말고 손으로 살을 발라 내야 해. 미꾸라지를 잘 삶아서, 소쿠리에 넣고 바가지로 잘 으깨는 것이 기술이여. 채도 단계별로 여러 개를 쓰고 있지. 처음에 쓰는 채는 틈이 넓지만 뒤로 갈수록 세밀해지지.

김지찬씨(4남) 아버지가 만드신 추어탕에선 살이 가루처럼 떠 다니는 것이 보여요.

아버지 그냥 먹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금방 알지. 믹서에 간 고기인지, 채에서 발라낸 고기인지 차이가 나잖아. 채에 거를 때도 되도록 살이 많이 나오고 뼈가 없도록 해야 돼. 하지만 손으로 하니까 약간의 뼈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어.

4남 제가 채에 미꾸라지를 으깨면 뼈가 더 나오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힘이 좋은 남자가 하니 여자가 하는 것보다 탕에 뼈가 더 들어가게 돼요. 칼슘이 많아지니 더 좋다는 손님도 있고 반대로 ‘왜 뼈가 많냐’고 묻는 손님도 있어요.

장남 시래기는 붕어찜처럼 뻣뻣한 게 좋나요? 부드러워야 되나요?

아버지 추어탕은 시래기가 첫째야. 부드럽게 느껴질수록 깊은 감칠맛이 나온다니까. 뻣뻣하면 맛이 없어. 또 무청 시래기에 들어 있는 미네랄 성분과 배추의 단 맛은 조미료 없이도 천연조미료 역할을 해준다고 보면 돼. 하지만 취향에 따라 일부러 쫄깃쫄깃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

장남 손님들이 산초와 천초(젠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 산초나 천초는 미꾸라지에서 나는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넣지. 많이 넣을수록 추어탕 본래의 맛은 감해지고 산초나 천초 향이 강해지지. 그래서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으면 굳이 안 넣어도 돼. 젠피 혹은 토천초라고도 하는 천초는 산초보다 향이 훨씬 강하지. 그래서 값도 훨씬 비싸. 고산지대에서 많이 나는데 구례 장수 무주 등 고산지대 사람들은 김치에도 넣어 먹는다고 그래. 위장을 강하게 하고 소화에 도움이 되고 기생충 예방에도 특효라고 알려져 있지.

장남 사람들 대부분이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어요.

아버지 추어탕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밥을 말지않는게 정석이여. 밥 한 숟갈 뜨고 국 한 수저 떠 먹으면서 맛과 향을 즐기는 거지. 탕이 나오자마자 밥을 말면 밥과 국이 금방 퍼져버리고 맛도 덜해져. 정 말아 먹고 싶으면 먼저 반만 말아 먹고 나머지 밥은 나중에 다시 말아 먹는 것이 요령이지. 밥의 반을 먼저 따로 먹고 남은 만큼만 말아 먹는 방법도 있지.

4남 추어탕 끓이는 과정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끓여 보면 항상 같은 맛을 내는 게 쉽지 않아요.

아버지 나는 지금도 추어탕을 끓일 때 기도하고 해. ‘모든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소화도 잘 되는 음식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야. 항상 옛날 촌에서 장작불로 끓일 때 불이 사그라들면 불을 앞으로 밀며 불조절하던 외할머니 생각을 해. 지금은 가스불이지만 여전히 불조절에 온갖 신경을 쓰지. 끓일 때는 불조절하느라 옆에서 하는 소리도 안 들려. 걸려 오는 전화도 안 받아. 불이 타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니까. 그래도 너희들은 나한테 배웠으니까 제대로 배운거야.

4남 속이 불편하거나 몸이 허한 손님들이 자주 오셔서 추어탕을 드시고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보람돼요. 어쨌든 추어탕은 체질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잘 맞는 음식이에요. 그런데 반찬은 집집마다 달라요.

아버지 일단 부추는 추어탕과 찰떡 궁합이야. 스태미너식이잖아. 그리고 상추와 배추 등 푸른 야채는 섬유질과 미꾸라지에 없는 영양소를 공급해 주지. 나는 일부러 겉절이만 내놔. 손님이 오면 즉석에서 무쳐 주는데 신선한 야채를 내놓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야. 오징어젓갈도 별미로 괜찮지.

장남 추어탕집 주인이 젊은 사람이면 믿지 못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중장년층 손님 중에 ‘추어탕 맛은 있는데 주인 얼굴 한번 보자’고 해 막상 인사하면 떨떠름해 하기도 해요. 젊은 사람이 추어탕 맛을 제대로 낼 수 있겠느냐는 의혹의 눈초리지요.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일할 때 보다 불편한 점도 있어요. 그나저나 아버지가 끓이시는 추어탕 맛이 항상 변함없이 일정한 것을 보면 신기해요.

아버지 결국 음식은 정성이야. 정성이 배지 않으면 절대 맛이 날 수 없어. 양념 하나하나도 저울을 써서 양이 일정하게 넣는다니까. 그래서 나는 장인정신을 갖고 신용을 중시하는 일본의 음식 장인들을 존경해. 지금도 탕을 다 끓이면 모든 직원들에게 일일이 맛을 확인시키고 비로소 손님에게 내놓는다니깐. 어쨌든 한국 남자 중에 나만큼 추어탕 잘 끓이는 사람은 없을 거야.

● 추어탕의 영양학

논과 도랑, 흙탕물 속에서 자라는 미꾸라지는 배를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돋워 주는 대표적인 스태미너식이다.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비타민 등 각종 무기질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정력 강화에는 최고다. 술을 빨리 깨게 하는 역할도 해줘 사계절 강장식으로도 손색 없다. 특히 미꾸라지 점액물의 구성성분인 콘드로이친 황산은 노화에 따른 세포 위축이나 수분감소 현상을 막아줘 피부도 튼튼하게 해준다.

● 김홍귀씨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1988년 남원추어탕 집을 개업, 15년 넘게 추어탕만을 끓여 온 전문조리사. 자칭 타칭 국내에서 추어탕을 가장 잘 끓이는 남자로 TV 등 각종 언론매체에 단골출연하고 있다. 아내는 방배동에서, 장남 범수씨와 4남 지찬씨는 길동에서 각각 같은 상호로 남원추어탕집을 운영한다.

/글·사진=박원식기자 parky@hk.co.kr

■추어탕 맛있는 집들

원주식 추어탕-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끓인 맛이 칼칼하면서도 시원하다. 통마리가 거북(?)스런 사람은 얘기하면 갈아서 준다. 국물이 끓을 때쯤 산 미꾸라지를 솥에 넣고 뚜껑을 후다닥 닫는 일은 스릴넘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꾸라지가 튀어 나온다고. 미꾸라지의 힘인가? 조금 끓이다가 국물을 본다고 다시 뚜껑을 열어도 큰 일. 그래도 튀어 나온다. 옷을 버리지 않으려면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집에서 만들어 4년 이상 숙성시킨 고추장 국물을 육수로 쓰고 감자와 버섯 토란순 부추 대파 부추 미나리 등 야채도 푸짐히 들어간다.

원주추어탕 역삼점 (02)557-8647 삼성점 (02)556-9879

안주인 김옥란씨가 아들 이남수씨와 함께 24년째 맛을 잇고 있다. 7,000원. 숙회는 2만원, 고기를 더 많이 넣은 특추어탕은 8,000원. 삼성점에선 김씨의 언니 김옥순씨가 같은 맛을 낸다.

서울식 추어탕-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이는 것은 원주식과 같지만 양지머리나 곱창을 삶은 국물을 써 육개장에 가까운 얼큰한 맛을 내는 것이 서울식인데, 추탕이라도 부른다. 통마리로 끓여 담백한 느낌을 주고 추어탕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느타리와 모기버섯, 양파 대파 유부 두부가 듬뿍 들어가고 고추장도 많이 들어가 있어 맛이 풍부하지만 결코 맵지는 않다.

용금옥 (02)777-1689

코오롱빌딩 건너편에서 72년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원래는 통마리로만 하다 미꾸라지 간 것을 주문하는 손님도 많아 두가지 요리를 다 한다. 추탕 8,000원. 미꾸라지 볶음 1만5,000원, 4인용 전골 4만원. 술안주 추탕은 1만원. 산초장아찌가 반찬으로 나온다.

형제추탕 (02)919-4455

얼큰하게 끓여낸 추탕 맛이 깊고 깔끔하다. 추탕 맛 좋기로 유명한 신설동 형제주점의 맥을 잇는 집. 추탕 8,500원, 추어탕 8,000원.

곰보추탕 (02)928-5435

고려대 근처에 있는 유명한 추탕집. 된장으로 맛을 내 추탕을 끓이고 밀가루를 약간 풀어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옛날식으로 밥을 말아 나오는 추탕은 7,000원. 밥 따로는 8,000원.

남도식 추어탕-진하고 구수한 맛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도 지방에서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끓이는 대신 잘 삶은 후 소쿠리에 넣고 바가지로 밀어 고운 채에 살을 발라내 사용한다. 요즘은 믹서 같은 기계를 쓰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국물을 된장으로 진하고 구수하게 맛을 낸다. 반면 경상도는 국물이 맑고 깔끔한 것이 특징. 그렇다고 남도식 추어탕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통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요리해주는 집이 많다. 맛있는 집 중에 남원추어탕 상호를 쓰는 곳이 많다. 지방 이름이 들어간 상호는 등록이 안돼 누구나 쓸 수 있다.

남원추어탕 영등포점(02)2636-2232 방배점 (02)588-2112 길동점 (02)475-6345

3부자가 추어탕을 끓인다. 한그릇에 영등포는 6,000원, 방배, 길동점은 7,000원. 숙회는 2만5,000~3만원. 튀김 1만원.

남원추어탕 삼성동 (02)558-2243

강남에서 소문난 추어탕집. 남원 출신인 이길구 여사와 큰 딸 황경희씨가 추어탕을 끓인다. 통고추를 갈아 넣어 탕 국물 맛이 얼큰하다.

남원골추어탕 남영점 (02)794-1490 원효로점 (02)3275-1490

남도식 추어탕으로는 드물게 소고기 국물을 육수로 써서 국물이 진하다. 주인 오경자씨가 남영동에서, 동생 경애씨는 원효로에 1년전 추어탕집을 열었다.

남원추어탕 일산점 (031)967-0999

역삼동에서 유명했던 추어탕집이 얼마전 일산으로 이전했다. 단골 손님에게 자동차 스페어 키도 만들어 준다.

/글·사진=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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