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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이제야 장인의 사랑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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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이제야 장인의 사랑 이해됩니다"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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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어른께.당신을 처음 뵌 지가 벌써 27년 전 일이 됐군요. 하늘 같은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슬픔에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님의 주선으로 지금의 아내와 맞선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날은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고 다음 날 제가 기거하고 있는 형님 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180㎝가 넘는 키, 짙은 눈썹, 깡마른 체구….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왔습니다. 알고 보니 당신은 예비역 상사였습니다.

당신은 제 마음을 훤히 읽기라도 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첫째, 내 딸을 데려가서 절대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 주게. 둘째, 결혼식은 검소하게 진행할 생각이네. 약혼식은 생략하겠으며…."

저는 당신의 일방적인 의견을 들으면서도 주눅이 들어있던 터라 연신 "예, 그렇게 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여러 번 만나면서 당신이 첫 인상과 달리 정이 많은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당신은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 연신 하늘만 쳐다보았지요. 신혼 무렵이던가요. 당신은 불쑥 제 집에 전화를 걸어 "자네 집 근처에 들렀다가 전화를 했네, 통닭 배달을 주문했으니 가족들과 맛있게 먹게"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또 언젠가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 "자네,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네"하고 저를 불러냈습니다. 당신은 저와 함께 당신의 선산과 전답을 둘러보면서 흐뭇해 하셨지요.

사고가 나기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당신은 불쑥 메주를 들고 저의 집에 들렀습니다. "겨울에 메주가 없으면 맛있는 반찬을 만들기 어려울 게야." 그런데 그것이 당신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당신의 깊은 사랑에 보답을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신은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 방어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갖고 있었지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청년이던 제가 이제 50대 중반이 됐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사위 노릇 제대로 못했다고 책망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당신이 제게 베푼 사랑을 이제는 제 자식들에게 베풀겠습니다.

/장만선·부산 해운대구 우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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