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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KBS2 "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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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KBS2 "꽃보다 아름다워"

입력
2004.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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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드라마들이 사랑은 아름답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혹시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의 그 사랑이 다른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집안이 차이 난다? 사랑한다면 문제 없다. 상대가 이혼녀라면? 그래도 사랑한다면 함께 가야 한다. 그럼 자신의 오빠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면? 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아내에게 장기이식을 요구해야 한다면?영자(고두심)를 제외하면, KBS2 '꽃보다 아름다워'(수목 밤 9시55분)의 등장 인물들은 참 이기적이다. 영자의 남편 두칠(주현)은 젊은 여자와 딴살림 차린 것도 모자라 그 여자의 병 치료를 위해 영자에게 장기이식을 요구하고, 첫째 딸 미옥(배종옥)은 이혼녀라는 이유로 영민(박상면)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자 영자에게 왜 날 번듯하게 못 키웠냐며 화를 낸다. 또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둘째 딸 미수(한고은)는 실수로나마 자신의 오빠를 죽인 인철(김명민)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죄라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 죄밖에 없다. 두칠마저도 새 아내의 치료를 위해 자존심 다 팔고 자식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헌신적인' 남편이 된다. 그러나 두칠의 사랑은 헌신적이기에 영자와 자식들의 가슴을 찢어놓는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때문에 괴롭지만, 결국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입는 상처는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꽃보다 아름다워'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말한다. 영자는 한없이 무력하고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그토록 몹쓸 짓을 한 남편을 위해 결국 장기이식을 결심할 정도다. 그러나 그녀를 그렇게 괴롭히던 남편과 자식들은 어느 순간 그 이타적인 사랑 앞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사랑을 발견한다.

때론 그 힘없는 사랑을 미워하고, 화도 내고,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 굽은 등으로,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작은 미소를 느낄 때쯤 우리는 그 앞에서 무릎 꿇고 펑펑 울며 속죄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기적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영자의 가족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이내 화해하고 웃으며 사는 것은, 영자에게서 참 사랑을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늘 주기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이들의 이기심과 폭력을 감싸안는 이유가 된다. 이것은 모성애의 신화이자, 동시에 우리 곁에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거짓말'부터 '고독'까지, 작가 노희경은 극단적인 상황의 연인들을 통해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제 노희경은 그 연인들을 묵묵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까지 보듬으며, 모든 사랑을 감싸 안는 더 큰 사랑을 이야기한다. 물론 노희경도, 그리고 나도 또다시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보다 아름다워'는 우리가 가슴 속에 늘 묻어두고 살 수밖에 없는 말 한마디를 하고 있다. 어머니, 사랑해요. 그리고 늘 죄송합니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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