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 골룸, 오 마이 프레셔스(오, 나의 소중한 것)." 코미디언 조혜련(34)이 이 짧은 대사 한마디로 '혜련 골룸'으로 불리며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과 동의어가 된 것은 불과 한 달 남짓 된 일이다. 그러나 지난 1월 10일 방송된 MBC TV 코미디하우스 '웃·지·마' 코너에서 그가 골룸으로 변신 했을 때 사람들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슬프거나 괴로워서 숨을 쉴 수 없는 경우는 흔하지만 웃겨서 숨조차 못 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웃다가 죽은 게 이런 거구나 했답니다. 특히, 그 표정 목소리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같은 칭찬의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빗발 쳤고 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삽시간에 전파됐다."조희진 PD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캐릭터 흉내내라고 할 때 요정 레골라스나 백색 마법사 간달프 시키려는 줄 알았어요." '웃·지·마' 코너에서 골룸을 흉내내기 전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적도 없다는 조혜련은 "완전히 속았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고 해서 설마 그 인간 같지도 않은 게 눈만 희번덕거리는 데다 대사도 없는 그거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여자로써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안 하겠다고 버티던 그는 "어설프게 해서 사람들 웃기지도 못하느니 극약처방을 하는 심정으로 한 번 해보자"고 결심했다.
듬성듬성한 머리, 몸에 착 달라붙는 살색 스판 옷, 누렇게 썩은 이까지 1시간 넘게 분장을 마치고 '혜련 골룸'으로 변신하자 "너무 무섭다"며 코디가 울고 마는 사태가 발생했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랑 남편은 다시는 하지 말라고 반대했어요." 망가지는 건 이미지뿐이 아니다. 성대를 울려야 겨우 나오는 목소리 때문에 목이 쉬기 일쑤고 머리 분장을 지우기 위해서 휘발유를 바르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그가 견뎌내는 건 주위 사람들의 열광 때문이다. 방송이 나가자 홍진경을 비롯해 동료 연예인들한테서까지 축하 전화를 받을 지경이었다. 그런 '혜련 골룸'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덕에 코미디하우스에 '골룸이 간다'는 프로그램이 새로 생겼을 정도다. "아픈 아이들이나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 앞에서 골룸 분장하고 나타나서 웃겨드린다는 컨셉인데 길게는 안 할 거에요. 계속 하면 재미없다는 거 저도 잘 알아요."
어찌 됐든 '돈 되고 인기 높은' 골룸 노릇보다 더 그가 열중하는 일은 따로 있다. 정통 연기가 바로 그것. "원래 연극영화과 출신인데다 학교 때부터 연기하고 싶었어요. 돈 벌려고 코미디언 됐어요. 솔직히 얼굴이 별로라 연기하기도 힘들었고요."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선배인 영화배우 설경구와 함께 연기하던 그 시절을 못 잊어 하던 그는 3년 전부터 코미디 대신 연기를 선택했다. "사실, 코미디하우스로 복귀할 때도 고민 많았는데 남편이 그러더군요. '너는 코미디언일 때 가장 빛나보인다'구요."
SBS 드라마 '때려'에서 여자복서로 열연한 그는 이번에는 3월 12일부터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르는 '남자충동'(조광화 극작·연출)에 출연한다. 그가 맡은 건 한이 가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전라도 아낙네 박씨 역. 경남 고성 출신으로 지금도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금세 경상도말이 튀어 나오는 그가 진한 목포 사투리로 연기하기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뭣이여 잠깐 봐야 쓰겄다'는 말 한 마디에 슬픔을 녹여내야 하는데 참 힘들죠." 덕분에 요즘은 "러닝 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면서도 대사 연습을 할 지경"이라는 그는 "츄리닝 차림에 2,500원짜리 백반을 먹고 동료 연기자 술 사 줘가며 할지라도 연극이 좋다"고 말했다. 2년 뒤에 뉴욕에 가서 연기전공으로 학위를 받겠다는 야무진 꿈이 영 꿈만은 아닌 듯 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조희진 PD
'혜련 골룸'은 매주 토요일 7시에 방송되는 MBC '코미디하우스'를 담당하고 있는 조희진(35) PD 작품이다. "원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물들을 모두 패러디 해보려고 했어요. 간달프는 가수 서수남, 프로도는 이정수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어설플 것 같아서 골룸만 해보기로 한 거죠." 그가 유달리 '골룸'에 끌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골룸은 선과 악이 내재한 이중인격 캐릭터인데 그건 제가 논스톱 III 할 때부터 써먹었던 거라 익숙했어요."
그가 코미디 하우스를 담당하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눈에 띈다. 이경실, 최양락, 홍기훈, 조혜련 등이 출연 서로를 웃기는 코너인 '웃·지·마'가 그의 손을 통해 태어났다.
그 뿐 아니다. 점점 재미를 잃어가던 '3자 토론'은 '10분 토론'으로 리모델링 했고 '김현철의 1분 논평'에는 오랑우탕을 같이 출연시켰다. 조 PD의 이런 전략은 적중했고 코미디하우스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개인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코미디를 선호해요. 그래서 좀 옛날식 코미디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코미디·오락 PD가 되고 싶었다"는 조 PD는 입사 11년차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오늘은 좋은날' '주병진 나이트쇼' 등의 오락 프로 조연출을 거쳐 '21세기 위원회' '논스톱 III'의 연출을 맡았다. "요즘같이 힘든 때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좋겠지요. 그런 것 만들겁니다."
/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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