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맥클린 L고교 12학년이자 졸업반인 이모(17)군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학 진학을 코 앞에 두고 대입 준비에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겼다. 11학년말 치른 졸업필수시험인 표준학력고사(SOL·Standard of Learning)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 온 이군은 필수과목인 영어 작문시험에서 떨어져 올 여름 졸업 때까지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미국 고교 졸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SOL을 도입하는 주가 늘면서 졸업 예정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고 있다.
2월 현재 SOL을 채택한 주는 뉴욕 버지니아 조지아 인디애나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등 모두 19곳. 지난 해 말 메릴랜드주가 추가로 시행을 결정했다. 이 중 뉴욕 버지니아 캘리포니아주 등 절반 정도는 SOL에 반드시 합격해야 고교 졸업이 가능하며, 오리건 미주리 아이오와주 등은 시험은 치르지만 당락 여부가 졸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각 주가 SOL을 시행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고교 졸업생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의도에서다. 비록 대학에 가지 않고 곧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더라도 고용시장이 필요로 하는 교육수준을 충족시키자는 취지도 함께 담겨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졸업예정자들은 SOL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관련 수치가 이유를 잘 설명한다. 미국 내에서도 학력 수준이 상위권에 속하는 버지니아주의 경우 12학년생의 22% 가량이 SOL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6월 졸업을 앞둔 이 지역 12학년생 1만3,000여명 중 3,000여명이 SOL을 통과하지 못해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SOL 낙방생 중 80%가 넘는 2,423명은 필수 과목인 영어 읽기와 작문 중 한 과목 이상을 통과하지 못했을 정도. 12학년생들 사이에서 "고교 졸업이 명문대 입학만큼 어렵다"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하다.
SOL 시험 과목은 시행하는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폐어팩스나 맥클린 등 명문 학군이 위치한 버지니아주는 영어 읽기 및 작문, 수학, 기타 과학 등 최소 6과목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당 과목 종강시 SOL 시험을 치른다. 대개 11학년말까지 SOL 시험을 마치도록 하고 있으나 통과하지 못하면 대입 준비에 한창 바쁜 12학년에도 재시험을 봐야 한다.
SOL 필수과목 시험을 모두 패스하면 '표준 졸업장'(Standard Diploma)이 주어진다. 보통 중하위권 학생들이 표준졸업장만 따는 반면 상위권 학생들은 이보다 많은 시험과목을 통과해야 주어지는 '고급 졸업장'(Advanced Diploma)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다. 대학입학 최종사정 때 고급 졸업장이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SOL 확산을 두고 미국 교육계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도 나온다. "빈곤층과 소수계 학생들의 낙오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SOL이 조지 W 부시 정부의 교육개혁법 'NCLB'(No Child Left Behind·뒤쳐지는 학생은 없다)를 뒷받침하는 각주의 교육개혁법인데다 학력 증진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득세, 반대론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고교생들의 학력 수준 평가는 뒷전인 채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에만 매몰된 한국 교육계 현실이 떠올려진다.
/워싱턴에서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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