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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 "소비의 메카" "유행의 거리"는 이제 옛말 압구정 상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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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 "소비의 메카" "유행의 거리"는 이제 옛말 압구정 상권이 흔들린다

입력
200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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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도 없고, 보증금도 없어요. 그냥 가게만 좀 빼주세요."'실평수 9평에 권리금 없음, 보증금 없음, 월세만 70만원….' 이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내건 가게가 위치한 곳은 금싸라기 중에 금싸라기라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지하층도 아닌 1층이다. 유행의 첨단을 선도하며 한바탕 '소비의 카니발'이 펼쳐졌던 이곳에 권리금은 물론 보증금까지 포기한 가게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10평 기준에 권리금만 3억원 정도를 호가하던 대한민국 최고 상권, 그 '천혜'의 압구정 상권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청담동 엑서더스'에 경기불황까지

압구정동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로데오거리 일대는 확실히 패스트푸드점, 보세의류, 중고명품, 커피전문점 등의 중저가 업종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던 '오렌지족'들이 '노블레스족'으로 성장해 대거 청담동으로 빠져나간 이후, 압구정 상권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한 중고생들과 20대 초반의 '평범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IMF 때보다도 안 좋다는 불경기의 영향을 받는 곳도 주로 이런 중저가 업종들이어서 '강남은 불황을 모른다'는 속설도 옛말이 됐다. 이곳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42·여)씨는 "압구정동에서 장사한다면 돈 많이 버는 줄 알지만, 요즘은 평소보다 절반 이상 매출이 떨어졌다"며 "같은 압구정동이어도 우리 가게 같은 곳은 불경기의 영향을 곧바로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압구정로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불황이라고 돈 있는 사람들이 명품을 안 사겠냐"며 "압구정 상권은 업종과 입지, 규모 등에 %B따라 뚜렷하게 이분화된 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리금은커녕 발이나 뺐으면…"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면서 압구정로 일대에 즐비한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빨간 글씨로 '권리금 없음'을 강조한 매물 광고전단이 벽면을 빼곡이 메우고 있다. 압구정 대로변의 28평짜리 지하 단란주점도 권리금 없이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50만원에 나왔고, 지하1층의 35평짜리 가게도 보증금 3,000만원에 월 임대료 150만원으로 권리금 없이 나와 있다. 압구정동의 또 다른 중개업소의 박모 사장은 "오죽 급하면 권리금도 안 받겠다고 나서겠냐"며 "그런 가게는 장사가 안 된다는 말처럼 들려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권리금 없이 나와 있는 점포들은 주로 지하에 위치한 큰 평수들이지만, 목 좋은 1층에 위치한 10평 안팎의 소규모 액세서리,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가게가 빠지지 않으면 건물주가 보증금마저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액세서리 전문점이었던 로데오거리의 한 점포는 장사가 너무 안 돼 거의 창고처럼 방치돼 있다가 상점주인이 권리금을 포기하고 건물주가 보증금까지 없앤 뒤에야 나갔다.

부동산114의 이재만 팀장은 "지난해 2·4분기부터 압구정동 일대에 권리금 없는 상가들이 생기더니 4·4분기에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현재는 중소규모의 업종의 경우 권리금마저 포기해야 할 정도로 불황의 영향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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