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거듭해 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네 번째 처리 시도만에 드디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3년 2월 15일 라고스 칠레 대통령의 방한기간 양국간 FTA 협정문이 정식 서명되었고, 5개월 후 정부는 FTA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정부가 4대 농업특별법의 제·개정을 통해 농업분야 피해 보상 및 구조조정 지원을 약속하였음에도 우리 농업계는 칠레와의 FTA 체결을 우려하였다.1998년부터 칠레와의 FTA 타당성을 검토했고, 1999년 말 시작된 칠레와의 공식협상에 참여한 필자는 남다른 감회로 국회의 비준과정을 지켜보았다. 농업개방의 내용에 비해 너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칠레와의 FTA가 우리 농업을 말살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사과, 배, 쌀은 물론이고, 마늘, 고추 등 양념류를 포함한 400여개 품목이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농산물 수입급증 시 관세양허를 중지하는 특별세이프가드도 도입되었다. 거기에 더해 1조5,000억원의 예산과 기금을 농업분야에 지원하기로 하였다.
우리 농업계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정부가 사실상 수용하였음에도 농업계가 칠레와의 FTA를 반대했던 것은 농업의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FTA가 재벌기업에 이익이 되는 반면, 농업은 피해만 본다는 인식도 작용하였다. 그러나 FTA는 수출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수출증가로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게 되고, 이는 농산물을 포함한 내수 진작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즉, FTA의 이익은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굳이 FTA의 세계적 추세를 들지 않더라도 농업계는 FTA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 국가가 자국의 무역장벽은 그대로 두고 다른 국가의 개방을 요구할 수 없고, 개방과 개혁을 거스를 수 없는 게 세계적인 조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개방화 추세에 농업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FTA 체결에 따른 정부의 지원을 활용하여 미리 농업구조를 조정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어차피 몇 년 후면 다자간 협상 타결로 우리 농업의 추가개방이 불가피해진다.
만약 농업분야 개방을 보류하고, 정부 예산이 농업에 투입되지 않는다면, 우리 농업의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의 농업특별법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전업농 중심의 농업생산 체제를 발전시키고, 농지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농업외 소득이 증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령 및 빈곤 농업인에 대한 소득지원을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이번 FTA 비준으로 농업문제가 해소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나, FTA 추진의 동력을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추진중인 싱가포르 및 일본과의 FTA 협상도 급물살을 탈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와의 FTA 검토를 제의해오는 나라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물론 농업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FTA를 둘러싼 사회적 진통은 되풀이 수밖에 없다. 향후 전개될 동남아, 미국, 중국 등과의 FTA에서 농업 개방의 진통은 칠레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클 것이다.
한때 정부가 검토했던 FTA추진이행법의 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FTA와 같이 이해당사자가 많이 관련되고, 정치권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안을 차질 없이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검토, 이해당사자 협의, 정치권과의 사전의견 조율 등을 명문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통상정책 결정과정에 이해집단과 국회가 함께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결된 협정의 비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F? 있다.
정 인 교 대외경제정책硏 FTA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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