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지우(52·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씨가 계간 '창작과비평' 2004년 봄호에 '두고 온 것들'과 '시에게' '제주 바닷가를 걸어간 발자국' 등 신작 시를 발표했다.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출간한 뒤 6년 만에 처음으로 문예지에 발표하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시 쓰기보다는 희곡을 쓰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등 연극 작업으로 분주했다.지난 주말 만난 황씨에게 시 소식이 반갑다고 말하자, "지금까지 시를 학대했는데, 이제 시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그는 이런 심정을 이번에 발표한 작품 '시에게'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때/ 시에 피가 돌고,/ 피가 끓던 시절이 있었지;/ 피를 빨고 앙상해질 때까지 시를/ 학대하면서도, 딴에는 시가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아/ 세상 살기가 폭폭하다고만 투덜거렸던 거라.' 황씨는 "시는 꾹꾹 눌러서 압축하는 맛인데, 희곡을 쓰다 보니까 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시를 '몰아쳐서' 시집 한 권 분량을 만들어내는 게 올 겨울의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시인은 1년 내내 시인일 수 없다. 시인이란 직업이 아니라 상태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다가도 갑자기 시적 상태에 빠져들 때 시가 나온다. '이제 시에게 돌려주고 싶어'라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못 찾고 있어./ 상하지 않고도 피가 도는 온전한 시를…'('시에게'에서)라는 고백은 '일상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 시인 황지우'의 고뇌를 짐작하게 한다.
황씨는 최근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된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선정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새롭게 맡겨진 그 일이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할 만한 책을 선택해야 한다. 2월 말 선정을 마치고 올해 안에 번역과 윤문, 제작까지 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주빈국 선정을 염두에 뒀다면 3, 4년 전부터 이런 작업도 함께 준비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책을 제작하고 나서도 문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인 영어권 출판계의 장벽이 너무 두텁다."
지난해 여름 무대에 올린 '물질적 남자'의 후속작으로 이상우씨가 연출하고 어어부프로젝트의 장영규씨가 음악을 맡는 노래극 '춘향전'을 구상하고 있다. 희곡 작업을 묻자 "나는 '시쟁이'니까 시를 써주면 대본이 될 것"이라고 답한다. 2000년 공연했던 '오월의 신부'를 뮤지컬로 변주할 생각도 하고 있다. 그는 또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으로도 내정됐다.
이렇게 분주한 중에도 황씨는 "서울 전체를 시로 써보고 싶다"고 시인의 소망을 밝혔다. "내가 오래 살아온 곳에 대한 애정이 없었는데, 각국 도시를 다니면서 서울이 풍부한 시적 모티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월러스 스티븐스의 시처럼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그는 "범속한 삶이 발목을 잡아당긴다. 빨리 시적 상태에 들어가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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