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잇달아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영화는 이제 세계 속에 존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뚜렷한 자기 노선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가 뿌리내리며 수상에 이른 것 같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가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한 점을 수상이유로 분석했다. '사마리아'는 이미지 상으로 2년 전의 '오아시스'(베니스·이창동 감독)와 가까운 점이 많다. 비슷한 어감의 제목에서부터 중동(中東)이라는 먼 이역을 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부지불식 간에 우리 영화가 국제영화제를 겨냥하는 등 세계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그만큼 국제적 공감대도 넓어지고 있다.■ '오아시스'의 남녀 주인공은 용렬한 아웃사이더들이다. 그 소외된 국외자들을 통해 사랑의 진실을 감동적으로 전해 주었다. 사마리아는 성경을 통해 유명해진 지명이다. 성경은 강도를 당해 길에 버려진 유대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구조해 주고 뒷일까지 당부하는 일화를 통해 사랑을 역설한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이다.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차별했다. 사마리아인 역시 아웃사이더의 상징이다. 파뉜?많은 역정을 걸어온 김 감독은 아웃사이더의 쓰라림과 절망, 희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을 듯하다.
■ '사마리아'는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은 영화다. 전반부에서 '원조교제'를 하는 두 소녀 중 한 명의 죽음, 아버지 형사의 복수 등 통속적 소재가 다뤄진다. 어두운 사건을 거치며 마침내 용서와 화해, 원죄와 구원 등 종교적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독자적 어법으로 그려진다. 성속(聖俗)의 극적인 대비와 반전이 심사위원에게 깊은 인상을 준 듯하다. 베를린에서는 유사한 소재의 영%화들이 여럿 수상했다. 아버지가 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한 배경을 알뺐?정체성을 찾게 되는 '잃어버린 포옹'이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여성농부가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은총 가득한 마리아'와 일곱 명을 살해하고 사형당한 창녀 이야기 '괴물'이 각각 수상했다.
■ 침체된 사회분위기 속에 베를린 수상소식을 들으면서, '더도 덜도 말고 모든 부분이 영화산업만 같아라'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휴머니즘이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편치 않은 점도 있다. 여고생 원조교제라는 소재가 거북하고, 수녀를 연상시키는 누드에 가까운 포스터의 파격이 신경에 거슬린다. 영화가 국내용이었?만?덜 거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또 국내 영화제의 전통은 이런 과격한 작품을 호평하지 않으니,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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