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지인 전주 남고산성 숲은 전주시의 남단, 고덕산에서 흘러내린 낮은 산줄기에 자리잡고 있다.남고산성은 통일신라 말기 견훤이 후백제의 도읍지를 전주로 정했을 때 쌓았다고 전해지는 고덕산성으로서, 정유재란이 일어난 선조 30년 5월에는 만경산성을 수축(修築)하고 그해 11월에는 군량과 병기를 비축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말기 순조 때 다시 이 산성을 수축하여 남고진을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이때부터 남고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성안에는 고찰(古刹) 남고사(南固寺)가 있다. 전주 8경의 하나인 남고진의 저녁노을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남고사의 범종, 남고산성의 쇠북 소리는 잠자는 삼라만상을 두루 깨우는 불심의 맥박으로 느껴져, 찾는 이로 하여금 황홀한 경지에 빠지게 한다.
남고사 앞에는 남장대(南將臺), 뒤편에는 북장대(北將臺)가 있었는데, 남장대 아래 골짜기에는 군량미 6천석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 무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남고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여 각종 전투에서 전주를 방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남고산성 주변에는 화살대로 사용되는 이대가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밑에서 굳건하게 자라고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찬 바람결에 부딪히는 잎새 소리가 매섭다.
이런 역사와 경관을 간직한 남고산성의 숲은 다양한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혼효림(混淆林) 이다. 이 숲의 주인을 크기에 따라 나누어 보면, 상층에는 이 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로 만든 묵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상수리나무, 떡을 쌀 때 쓰는 떡갈나무·갈참나무, 우리나라 특산이며 분재 소재로 많이 이용되는 소사나무, 전국의 동구 밖 정자나무로 가장 많이C 식재된 느티나무와 대기오염에 강하다는 팥배나무, 흔히 식물천이과정 중 극성상에서나 볼 수 있다는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허리층에는 어렸을 적 나무 열매를 찧어 물고기를 잡는데 이용했던 때죽나무와 옻나무의 사촌인 개옻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하층에는 국수나무, 조록싸리, 청미래덩굴, 찔레꽃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오손도손 정겹게 살아간다. 물푸레나무를 타고 오르는 사위질빵은 줄기의 직경이 4㎝ 내외로, 장모가 사랑하는 사위에게 짐을 지우기에는 너무 자라 버린 것 같다. 바닥에는 북풍한설에도 늘 푸른잎을 달고 싱싱함을 뽐내는 인동덩굴이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능선에 위치한 남고사 주변 숲을 제외한 산림은 인근 주민들의 연료나 생활자재를 공급하느라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산은 경사가 급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토양이 흘러내려 바위가 노출될 정도로 척박한 산림토양을 갖고 있다. 이런 훼손된 숲에 식재된 물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는 나이 들어 힘이 다한 듯하다.
남고산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옛 선인들의 노력이 배어 있는 곳으로, 호국성지의 문화유산이다. 복원된 울창한 숲과 오래된 사찰, 옛 성터가 어우러진 훌륭한 경관으로, 전주시민의 여가활동과 역사 교육의 장소로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명섭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hnarbo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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