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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3> 수제모자 최 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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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3> 수제모자 최 혜 정

입력
200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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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정문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유리창이 커다란 모자가게가 있다. '꽁블'이라는 이름이 유리창에 선명한 이곳은 패션계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최고의 수제 명품 모자'를 만드는 곳이라고 손꼽는 곳이다.꽁블의 장인은 최혜정(36)씨. 프랑스의 유일한 모자 전문학교인 쎄엠떼(Le C.M.T. : Cours de Modliste Toiliste)를 나오고 97년 10월에 이 가게를 열었다. 그 후 줄곧 혼자서 수제 모자를 만들어오고 있다.

그가 만드는 모자는 언뜻 봐서는 너무 수더분하다. 색깔은 가라앉았고 모양은 소박하다. 머리에 썼을 때 비로소 얼굴이 편안하게 살아난다.

"보통 한국 사람은 머리가 커서 모자가 안 어울린다고 그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머리 자체도 프랑스 사람보다 크지 않고 다만 나이든 세대들은 얼굴이 평평하다는 것인데 입체 재단한 모자를 쓰면 얼굴 자체가 커보이지 않는다"고 최씨는 말한다.

그가 만드는 수제 모자와 기계서 나온 모자의 가장 큰 차이를 들라면 머리틀이 원형이냐, 타원형이냐에 있다. 대량 생산되는 모자들이 머리형을 원형으로 잡는 반면 그가 만드는 모자는 앞과 뒤가 약간 긴 타원형이 기본이다. 이것은 서양인의 머리형에 따라 프랑스 모자학교에서 배운 것이기도 하지만 "얼굴이 평평한 사람도 원형 모자보다는 타원형 모자를 씌웠을 때 더 얼굴이 작고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최씨는 말한다. '보아서 예쁜 모자'보다는 '썼을 때 얼굴이 돋보이는 모자'가 최씨가 지향하는 모자이다.

최씨가 모자 장인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좌절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꿔온 그는 서울예고엘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홍익대 미대를 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성신여대 서양화%과 입학 직후부터 준비해온 프랑스 유학이었지만 정작 졸업 후 프랑스에 가서는 국립미술학교(L'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 약칭 보자르) 입학시험에도 떨어졌다. "그 때 충격이 커서 많이 방황했다"고 하는데 그가 겪은 방황은 원하던 대학을 떨어져서 느끼는 그런 값싼 방황이 아니었다. "92년 입학 면접시험에서 교수들이 '당신은 프로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왜 굳이 이 학교엘 들어오려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한국에서 보자르 입학이란 사실 미술 공부 그 자체보다는 경력 관리 차원의 의미가 큰 것 아닌가. 프랑스에서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면, 아니 대학을 들어가면 이미 프로로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인데 예술가여야 할 내가 학위에 매달렸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오더라." 그는 그 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나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고 도자기와 판화공방도 기웃거렸다. 오브제 작업을 위해 찾았던 벼룩시장을 다른 이유로 뒤지는 일도 많아졌다. 친구들을 따라 오뜨꾸띄르(고급 맞춤의상실) 작업을 보면서 의상에도 관심을 갖다가 입체재단을 가르쳐주는 전문학교 쎄엠떼를 알게 됐다. 이곳은 프랑스에서도 유일한 모자 전문 학교. "의상이야 대개 머리 속에 어떻게 만들 거란 구상이 있지만 모자 만드는 법은 전혀 생소하던 차에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니 정말 신기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수제 모자 만드는 법에 매료되어 이 학교에 입학 등록을 했다. 94년 일이다.

프랑스에서 모자는 목형을 이용해 입체 재단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목형은 나무로 모자 형태를 깎은 것으로 두상을 본뜬 기본형 뿐 아니라 밀짚 모자, 중절모, 구불구불한 터번 등 모자 형태에 따른 온갖 종류의 목형이 다 있다. 프랑스에서도 목형은 단 두 사람만이 전문으로 만들고 %있다.

프랑스에서 돌아오자마자 지금의 자리에 모자 가게를 열었다. 모자 회사에 디자이너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막상 가보니 "디자이너가 하는 것이라고는 색깔을 정하거나 모자에 새겨질 문자의 크기나 위치를 잡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당시 모자라면 남자용 중절모가 아니면 야구 모자가 주종이었다. 한국에서 모자 열풍이 시작되기 한참 전이었고 수제 모자를 만드는 곳이라고는 서울 강남에 딱 한 군데 있던 시절이었다. (그 가게는 지금은 없어졌다.)

그는 꽁블을 열고서 3년간은 맞춤을 의뢰 받으면 잠도 못잘 정도였다고 한다. "맞춤 모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개업은 했지만 과연 고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모자를 만들 수 있을까 불안감이 말도 못했다"는 그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으면 소재를 집으로 싸들고가 새벽 3시까지 만들어 보는 강행군을 거듭했다. 4년 정도가 지나니 '어떤 모자라도 만들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지금도 손님이 찾아와서 모자를 써보고 만족한다고 할 때까지 안심을 못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정성을 다한다. 그의 모자는 7만, 8만원에서 30만원대 정도로 수제 모자인데도 국내에 들어와있는 수입 모자보다도 비싼 편이 아니다.

그는 모자를 만들면서 한국의 소재 산업 부진이 안타깝다. 모자를 만들기 위한 부자재가 다양하게 생산되지 않다보니 펠트천은 프랑스산 토끼털 소재를, 여름용 소재인 밀짚이나 사이살은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수입해야 한다. 심지어 모자에 반드시 들어가는 리본조차 색상이 다양하지 않아서 일본에서 수입해 쓴다. "우리나라가 원단산업은 발전했다지만 수요가 적은 소재는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으니 고부가가치 수공예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며 업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국내 유일" 꽁블 모자학교

최혜정씨는 그의 모자 가게 한켠에서 도제식으로 모자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국내에서 유일한 모자학교이다.

98년부터 교육을 시작, 지금까지 10명이 이 곳을 거쳐갔고 현재 7명이 배우고 있다.

1명은 이미 독립해 모자 가게를 열었다. 최씨에 따르면 6∼7개월을 배우면 모자 만드는 법은 대강을 익히고 1년 정도가 지나면 어떤 디자인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디자인에는 어떤 소재가 맞는지도 익히게 된다. 한마디로 1년이면 독립해도 좋다는 게 스승의 평가.

그런데도 꽁블 모자학교 제자 가운데는 1년이 지나도 '하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황석지(28·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황씨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다가 모자에 관심이 많아 2002년 9월부터 모자학교에 다니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모자와 수제 모자는 썼을 때 모습이 다르다"고 강조하는 황씨는 5년 정도 공부를 마친 후 모자 디자이너로 독립하는 것이 꿈이다. 모자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벌써 10명 정도에게 모자를 만들어 선물했다.

꽁블 모자학교 수업과정은 최씨가 프랑스에서 수업한 전과정을 따르되 한국 상황에 맞춘 그만의 비결도 소개된다. 처음에는 목형을 통해 모자의 기본 틀잡기를 배우며 이어 입체 패턴 뜨기, 리본으로 감아서 모자 만들기, 여름 소재와 겨울 소재 다루기 등을 고루 익힌다. 특히 패턴 부분은 프랑스 학교에서는 목형에 입체 뜨는 방법을 일러주면서 그대로 따르도록 가르치지만 한국에서는 목형 없이 패턴만으로 모자를 만들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서 머리 모양에 따라 패턴을 뜨는 원칙을 가르쳐 준다. 수업료는 4회를 기본으로 하며 월 4회 1년 교육을 받을 경우 20개 정도의 모자를 만들어 보게 된다.

모자학교 학생은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대체로 의상을 전공했던 이들이 많?0? 선택하는 편. 2002년에는 고등학생 1명이 엄마의 권유로 잠시 다니기도 했다. 딸을 모자학교에 보냈던 김순태(42·서울 마포구 연남동)씨는 "한국의 교육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하려면 또다른 전문기술을 학원에서 익혀야 한다"며 "그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에서 제 나름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장인학교가 정규 학교로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334-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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