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월18일 미국의 화가 겸 공예가 루이 컴퍼트 티퍼니가 뉴욕에서 태어났다. 1933년 몰(沒). 티퍼니는 유명한 장식미술회사 티퍼니 스튜디오의 설립자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식미술회사 못지않게 유명했던 뉴욕의 보석 상점 티퍼니 앤드 컴퍼니의 창업자였다. 유리 예술의 신경지를 열어보인 루이 티퍼니의 화려한 감수성은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보석들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는 가업을 잇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그림 재능을 자랑스러워 했다.티퍼니는 뉴욕에서 조지 이니스와 새뮤얼 콜먼에게, 그리고 파리에서 레옹 바이이에게 회화를 배운 뒤 한 동안 유화와 수채화에 몰두했다. 티퍼니의 화폭에 담긴 제재들은 대체로 비(非)서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 아시아적·이슬람적 감수성을 아버지가 운영하던 보석 상점의 수석 디자이너 에드워드 무어와 파리 시절의 스승 바이이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고 이런 오리엔트적 감수성은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될 유리 공예와 벽화에까지 이어졌다. 티퍼니가 손댄 중요 장르 가운데 하나인 스테인드글라스도 기실 그 연원이 중동 지역에 있다.
티퍼니의 유리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파브릴 유리다. 각도에 따라 빛깔이 달리 보이는 이 파브릴 유리는 티퍼니 스튜디오에서 첫 선을 보이자마자 전세계의 일급 유리 공예 스튜디오들에서 모방에 열을 올렸지만, 그 정교함과 스타일에서 티퍼니의 것을 따라잡은 모방자는 거의 없었다. 백악관 접견실과 멕시코시티 미술회관을 비롯해 당대의 수많은 공공건물의 실내 장식에 티퍼니의 손길이 닿았다. '아르 누보(새로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채색 유리와 벽 모자이크 분야에서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이뤄진 혁신의 큰 부분은 틋셕榜臼? 그의 동료 화가 존 라파주의 이론적·실천적 작업에 힘입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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