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이창세 부장검사)는 무서운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버 세상의 부패와 싸우는, 검찰내 유일무이한 조직이다. 컴퓨터수사부는 최근 1년 동안 벅스뮤직, 반도체 기술유출, 음란물 엿보기 프로그램, 인터넷 최저가 경매, 무차별 휴대폰 광고 메시지 등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사이버 수사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컴퓨터수사부가 맡은 빼놓을 수 없는 중책 가운데 하나가 검찰의 각종 압수수색 수사 지원 업무다. 특히 최근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컴퓨터수사부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7일 불법 비자금 수사를 위해 대우건설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던 컴퓨터수사부 요원들은 회사에 도착하는 즉시 전산실로 내달렸다.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며 어르고 달래기를 수 차례, 육중한 보안문을 지나 전산실에 진입한 수사팀은 모든 직원에게 "동작 그만"을 외친 뒤 시스템 파악에 나섰다. 몇번의 클릭 만으로도 순식간에 소중한 자료가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수사팀은 직원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지난해 초 SK 압수수색당시에도 주요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뜯어 달아나는 직원을 잡은 경험이 있었다.
일단 전산실을 장악하면 수사팀은 주요 서버에 담긴 정보를 백업하는 한편, 사내 전산망을 통해 오고간 정보를 검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솎아 낸 정보 덕분에 불법 비자금 수사팀은 "기억이 안난다"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뺌에도 불구, 수사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정중택(38) 수석 검사는 "전산실 압수는 초긴장속에 이뤄지는 시간과의 싸움이지만 서버에 담긴 자료가 중요한 증거가 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연구 작업에도 열심이다.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는 사이버 범죄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수사기법이 더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갑을 차던 피의자들조차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았느냐"고 놀랄 정도였던 인터넷 카드깡 수사는 SQL(눈으로 볼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상의 자료를 찾아주는 명령어) 분석기법을 이용한 결과였다.
"수백억원대의 의심스런 현금 흐름이 있다"는 금융정보분석원(FIU·본보 1월28일자 A14면 반부패의 전사들 3회 보도)의 막연한 첩보는 수사팀의 밤을 샌 연구를 통해 실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수사를 주도했던 김욱준(31) 검사는 "업자들이 보통 정산 직후 자료를 폐기하기 때문에 적발해 봐야 고작 1,2억원대 규모였던 인터넷 카드깡 수사에서 1,000억원 규모의 카드깡 범죄를 적발할 수 있었던 것도 신 수사기법 덕분"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법리 싸움에서 이긴 경우도 있다. "경매 최저가를 맞추면 수억원대의 경품을 준다"는 선전으로 급성장한 인터넷 최저가 경매 사이트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업체 대표가 치밀한 법률 검토 작업 끝에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내놓은 작품이었다.
검사들조차 수사 과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 마땅치 않다"며 갑론을박을 펼칠 정도로 논란을 빚었지만 적극적인 법리 검토 끝에 '무허가 현상업'으로 결론짓고 기소했다. 국내 사법사상 해당 조문이 적용된 첫 사례였다. 낯선 죄목에 판사도 판단을 꺼려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결국 업체 사장은 최근 현상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덕분에 300억원대 시장이었던 최저가 경매 사이트는 조만간 웹상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이병수(37) 검사는 "예산 부족으로 수사에 필수적인 고가 장비 구입이 지연되는 등 미개척 분?%?%F를 헤쳐나가야 하는 고충도 많지만 부패없는 사이버 세상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260억대 인터넷 카드깡 IP 추적 조직 일망타진
2003년 6월 중순 오전 3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0층 인터넷 범죄 수사센터. 난수표처럼 모니터를 가득 채운 IP주소(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에 부여되는 고유한 주소)의 흐름을 쫓던 컴퓨터수사부 수사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백 개의 동일한 온라인 결제 승인 IP가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IP주소, 즉 한 대의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각종 상품의 가격이 하나 같이 '100만원' '500만원'식으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총 구매 금액만도 수십 억원이 넘었다. 전문적인 인터넷 카드깡 업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었다.
수사팀은 즉시 KT에 IP주소의 실제 주소를 문의해 작업 사무실로 보이는 3곳의 위치를 확보했다. 다음날 수사팀은 '인터넷 범죄자'들이 주택가에 차려놓은 사무실을 동시에 급습, 카드깡 일당은 물론 증거자료 일체를 압수할 수 있었다. 총 사기금액 260억원대의 사상 최대 인터넷 카드깡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순간이었다.
■ 이창세 컴퓨터수사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를 이끌고 있는 이창세(42·사시25회) 부장검사는 "인터넷 등 사이버 세계가 갈수록 영역이 넓어지고 복잡해지고 있지만 관련 법규 등은 여전히 미비해 무질서가 판을 치고 있다"며 "사이버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는 것이 수사팀의 가장 큰 임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특히 2000년 이후 인터넷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각종 신종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하지만 범죄를 적발해도 관련 %B법률이 대부분 1950년대와 60년대 제정된 것이어서 법규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호소했다. 그 때문에 지난 1년간 사이버 세계의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닌 이 부장이 인터넷 범죄 대책을 위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과제 역시 별도의 사이버(인터넷) 관련 법규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부장은 최근 사회문제화 하고 있는 인터넷 도박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상에서 화폐로 통용되는 사이버 머니가 재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율할 법이 없는데다, 업주가 법정 구속돼 화제가 됐던 인터넷 최저가 경매 역시 '현상업'(懸賞業)이라는 죄목을 겨우 찾아내 처벌이 가능했다.
이 부장은 또 인터넷 수사의 어려움으로 익명성이 통용되고 음란 등 범죄 사이트가 대부분 외국에 서버를 두는 점 등을 꼽았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퍼져나간 PC방에서 사기 등 범죄를 저지를 경우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해커 출신 등 컴퓨터 전문가 특채 제도가 검찰에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휴대폰 스팸 메일 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이 부장은 최근 모 재벌의 빗나간 상혼을 질타한 '투명인간 아이템' 사건과 470억원대 인터넷 쇼핑몰 사건 등을 적발해 주목을 받았다. 대검 과학수사과장까지 지낸 검찰내 손꼽히는 '과학수사통'인 이 부장은 그러나 "나는 아직 컴퓨터를 제대로 다룰 지도 모르는 컴맹"이라고 손을 내저은 뒤 "대신 사이버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기위해 밤낮 없이 뛰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바로 '클린 코리아'를 만드는 주인공"이라며 활짝 웃었다.
/강훈기자 hoony@hk.co.kr
■ 컴퓨터수사부
2000년 발족한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는 21일로 4돌을 맞는 검찰내 신생 조직이다.
이창세 부장검사의 지휘 아래, 검사 4명과 전문요원 15명이 유기적으로 뭉쳐 광활한1 사이버 세상을 누비고 다닌다. 구성원은 적지만 일단 컴퓨터수사부에 발을 들여 놓으면 6개월간 정보화교육과정에 입교해 충분한 사전지식을 쌓아야 한다. 컴퓨터수사부에 배치가 된 뒤에도 수시로 첨단 기술에 대한 외부 교육을 반복해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수사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검찰내 사이버 범죄 전문가 집단임을 자부하고 있다.
특히 검찰 공무원 가운데 선발되는 전문요원들은 검찰내에서도 유일하게 순환보직 원칙에서 예외로 인정받을 만큼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는 경찰 사이버수사대와 달리 주로 기획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합법적인 행위와 불법적인 범죄를 가르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동성과 즉시성이 요구되는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이나 바이러스 유포 등 현재진행형 사건은 경찰에 맡기고 있다. 대신 컴퓨터수사부는 주로 대규모 불법 전자상거래 사건이나 법률적으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사건에 치중한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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