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선심성 개발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이를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시민·환경단체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뒷짐만 지고 있다. 낙천·낙선운동 등 총선에 온 신경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민·환경단체가 모두 총선에 '올인'하는 사이 푸른 숲은 사라지고 국토는 난개발에 신음하게 됐다. 전국에 100만평 규모의 신도시 50개를 건설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야심찬 계획이 발표된 15일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주요 시민·환경단체들은 성명서 한 장도 내놓지 않았다.환경정의시민연대가 16일 짤막한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이 고작이었다. 신도시 건설계획이 나올 때마다 환경 파괴와 교통난 등 문제점을 알리는 성명서를 재빨리 배포하고 기자회견 캠페인 시위 등을 갖던 과거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올들어 건교부 농림부 국방부 등이 내놓은 개발계획과 토지관련 규제완화조치만 해도 줄잡아 10여건. 정부는 경기부양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최근 120여개 토지 관련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고 농지 규제완화,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수도권 난개발과 투기방지를 위해 강화했던 토지규제정책을 180도 바꾼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도 개발열풍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시는 연내 뉴타운 12곳 230만평을 개발하고 그린벨트 258만6,000평을 해제, 택지로 만들 예정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틈만 나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강북에 20만∼30만평 규모의 첨단산업단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기도도 1,152만8,000평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은 물론, 분당(600만평) 규모의 신도시 20개를 개발한다는 무리한 계획까지 내놓았다.
이처럼 개발정책이 남발되는데도 시민·환경단체는 아무 말이 없다. 올들어 정부의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는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주요단체의 성명서도 47일간 1∼2건에 불과하다. 시민·환경단체에 가입한 일반 회원은 물론이고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조차 의아해 할 정도다.
대신 시민·환경단체들은 총선시민연대와 총선환경연대 등을 만들어 공천 부적격자 명단 발표 등 선거활동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현재 단체별로 2∼3명을 총선시민연대와 총선환경연대에 파견하고 있고, 앞으로 더 보낼 예정"이라며 "인력 부족 등으로 정부의 개발 정책에 조직적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조직적 대응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별 조직이나 전문가 모임 등을 통해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정부의 환경정책 부재 못지않게 민간단체의 '환경운동 부재'에도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ID가 '30대 한국인'이라는 네티즌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환경단체가 정치운동을 하는 것도 환경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본연의 환경운동을 방기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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