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관련 기업인에 대한 사법처리에 때맞춰 노무현 대통령이 기업인 처벌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인들까지 과거를 묻는 것은 국민과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얘기다. 우선 기업과 시장이 반길 것이고, 공감할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고질적 정경유착의 뿌리인 정치자금비리 척결을 외친 대통령이 스스로 명분을 훼손하는 것은 문제다. 검찰 독립과 엄정한 수사를 되뇌면서, 수사와 처벌 한계를 제시하는 듯이 들리는 언급은 한층 모순되고 부적절하다.노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 대선자금 수사가 기업과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를 단호하게 반박했다. 정경유착 청산은 시대적 과제이며, 기업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도 도움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새삼 경제에 부담될 것을 걱정한다니 혼란스럽다. 경제와 민생부터 돌봐야 할 처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으로 보기에는, 상황에 따라 유리한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는 정략적 말 바꾸기로 비칠 소지가 더 크다.
정치개혁은 비리 정치인을 처벌해 솎아내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없고, 정경유착에 편승한 기업인을 애꿎은 피해자로만 볼 것도 아니다. 사리가 이렇고 여론도 정치인과 기업인을 가림 없이 응징할 것을 요구하는 마당에, 대선자금 수사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준에 그치기를 희망한다는 언급은 법원칙보다 정치적 편의를 좇는 발상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원칙과 독자 판단에 따른 수사를 거듭 다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검찰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서든 여론을 의식해서든 간에, 재벌 총수 등을 떠들썩하게 소환 조사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기 바란다. 엄정하면서도 경제 영향 등을 신중하게 고려한 사법처리를 하되, 조용히 원칙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도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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