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늘 '이변(異變)'이란 말이 붙는다. 1999년 '섬'으로 처음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니스 본선에 올랐을 때도, 2001년 '수취인불명'으로 베니스에 또 한번 진출했을 때도, 이듬해 베를린까지 '나쁜 남자'로그를 초청했고, 마침내 14일 '사마리아'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을 때도.다른 감독이라면 그렇게 말했을까. 굳이 추측까지 할 필요도 없다. 임권택 감독이 '춘향뎐'으로 칸영화제 본선에 처음 오르고, 2년 뒤인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을 때, 같은 해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베니스에서 같은 상을 받았을 때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자. 임권택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기에, 이창동 감독은 빼어난 소설가란 전력이 있어 대접을 달리 해야 한다면 할말이 없다.
이변이란 '예상하지 못한 사태나 괴이한 변고'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는 처음 한번이었을 때에 쓰는 말이다. 가학과 충격적 소재인 '섬'이 처음 베니스영화제에 나갔을 때는 분명 '이변'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세번째 영화로, 처음 베니스에 나가 감독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도 이변이다.
그러나 이변은 한번이다. 같은 일이 반복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이변의 연속이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우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상에 대한 무시의 태도도 깔려있다.
저예산 영화로 완성도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그의 영화를 그런데 왜 베니스와 베를린이 거푸 초대했을까. 처음 '섬' 때부터 해석이 구구했다. "일상성에 지친 유럽영화계가 상식을 무너뜨리는 자극적인 폭력과 보편적 가치관을 뒤집는 그의 영화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란 해석은 그나마 나았다. 괴상한 동양영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라느니, 영화제 수준이 떨어진 모양이라느니.
96년 1억원짜리 영화 '악어'로 데뷔해 줄곧 저예산 영화를 고집하고, 상처 받은 아웃사이더의 화해를 끔찍하지만 독특한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 김기덕(44) 감독에 대한 우리 영화계와 일부 매스컴의 편견은 지독하다.
그들은 말은 저예산의 한계라고 하면서 그의 영화적 완성도를 상업영화와 비교했고,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추구하는 반추상주의 미학과 일관된 주제와 표현양식을 비웃었다. "나이를 먹으며 사람 사이 관계에서 인내가 늘었다. 그것이 최근 두 편의 영화에 투영됐다"는 그의 고백조차 '상업성과 어설프게 타협하는 변명'으로 취급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가 왜 저예산 영화를 고집하는지, 경북 봉화 산골 출신으로 어린시절 아버지의 끔찍한 폭력으로 영혼이 상처 받은, 정식 학력이라고는 중졸이 고작인 그가 왜 끈질기게 영화를 통해 소외된 자의 상처와 고통스런 화해를 추구하는지 마음을 열고 들여다봐야 한다. 단 15회 촬영으로도 영화 1편을 완성하는 그에게서 비능률로 턱없이 제작비만 올라가는 한국영화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에 대한 무시나 편견이 작품에 대한 호(好), 불호(不好)에 앞서, 우리사회(영화계도 마찬가지)에 존재하는 학력주의, 비주류에 대한 배척 풍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문화와 예술의 길은 책 속에도, 돈 속에도 있지 않다. 16일 베를린에서 돌아온 김기덕은 말했다. "우리사회를 이분법으로 보지 말자. 주류나 비주류나 삶의 상처와 아픔은 같다"고. 선입견 없이 그에게 감독상을 안긴 베를린영화제 역시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대 현 문화부장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