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은주 기자의 컷]때와 장소 안가리는 "X팔" "X나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은주 기자의 컷]때와 장소 안가리는 "X팔" "X나게"

입력
2004.02.17 00:00
0 0

조연 배우로 요즘 스크린에 얼굴을 자주 내미는 배우 공형진이 '쉬리'에 캐스팅되기 위해 몇 개월동안 영화사에 날마다 출근했었다는 사실은 이제 영화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화. 이런 배우의 열성에 감복했는지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 그를 캐스팅해서 이번에는 제법 굵직한 배역을 하나 맡겼다.극중 영만은 말이 많고 정도 많은 캐릭터로 그가 진태(장동건)의 무모한 욕심 때문에 전사하자 동생 진석(원빈)은 형 행동에 극단적 혐오감을 느낀다. 영만의 죽음을 계기로 형제가 갈라서는 것이다.

문제는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사는 영만의 말품새. "X팔, 이거먹고 어떻게 총을 쏘라고" "X나게. 무슨 소리야" 적어도 영만의 대사만을 발췌해서 들으면 요즘 유행하는 조폭 코미디와 별반 차이가 없다.

문제 하나. 과연 한국전쟁 당시에도 'X팔' 'X나게' 같은 육두문자를 지금처럼 '허벌나게' 사용했을까. 물론 이런 육두문자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이고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이 보다 더한 욕도 나올 수 있을 법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정말 용감했던 전우'가 "어허, 아뿔싸라네" "이런 낭패로세"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40∼50년대 군산의 유명 기생 장금도씨는 "당시 손님을 오빠라는 호칭 대신 영감, 선생님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당시 말은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고운 여중생까지 "그 오빠 절라 잘 생겼다"고 말하는 지금과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문제 둘. 설사 그런 종류의 욕설을 많은 사람들이 썼다 한들, 이 대작 전쟁 영화에 시종 '18'을 입에 달고 사는 캐릭터는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 굵직한 전쟁 영화, 애닯은 로맨스도 없는 이 남성 영화의 흥행에 대한 강박이 이런 갈증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조폭 영화가 "아, 나를 배신하는 동생을 보니, 무릇 데카르트적 회의가 몰려오는군" 식으로 대사 처리를 하는 것도, 정색하고 만든 영화에 요즘 조폭 영화의 캐릭터를 끼워 넣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애들이 좋아한다고, 한정식 상 한 가운데 돈가스, 라볶기를 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컷!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