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57)씨가 다시 펜을 들었다. 6년 만이다. 오씨는 이번주 발간되는 계간 '문학과사회' 2004년 봄호에 장편소설 '목련꽃 피는 날' 첫 회를 발표한다. 그는 1998년 계간 '작가세계'에 50매 분량의 소설 '얼굴'을 발표한 뒤 침묵했다.'목련꽃 피는 날'은 그의 첫 장편이기도 하다. 등단 36년을 맞았으며 네 권의 창작집과 한 권의 중편을 통해 '아름다운 문체로 여성의식을 소설화하는 작가'로 잘 알려진 그이다. 호흡이 긴 장편에 처음으로, 그것도 오랜 침묵 뒤에 도전하는 것은 스스로 시험을 거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4회 연재를 계획하고 있다. 작가는 16일 "첫 장편이라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장편소설이기 때문에 이렇게 혹은 저렇게 써야겠다고 계획해놓은 것은 아니다. 글이, 마음이 가는 대로 쓸 것이다."
작품 활동을 한참 쉬었던 이유를 묻자 오씨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겁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쉽게 글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 삶이 조금씩 보이면서 말이다." 그가 살고 있는 춘천으로 출판사 편집자들이 찾아와 작품을 청탁했지만, 두려움에 붙들린 오정희씨는 작품을 쓰기 힘들었다. 그랬던 것이 어쨌든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써나가면서 극복할 것이다." 작가의 각오다.
'목련꽃 피는 날'은 작가인 화자(話者)가 자신의 과거 작품의 배경이 된 인천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추억 속의 인천을 가는 단 하룻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을 겪고 그에 얽힌 기억을 되살려낸다. 작가의 체험과, 이전 소설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 작품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오정희씨는 1950년대 초반 아버지가 석유회사 인천출장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천으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에서 살았던 수년의 기억을 '중국인 거리'(1979)에 담았고 이 단편은 가장 뛰어난 성장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 됐다. "장편 '목련꽃 피는 날'의 중년의 여성 작가는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 소녀가 어른이 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소녀는 사춘기 전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그때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공간인 1950년대 인천에서 보냈다. 나는 언젠가는 그 소녀가 자라 그때 그 곳을 다시 가보는 얘기를 쓰겠다고 생각해왔다."
작품에서 '개점 휴업상태'로 지내온 소설가는 문예지의 취재 청탁을 받고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국인 거리를 떠올린다. '길을 잃었을 때 처음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다시금 가닥을 잡아가는 것도 길 찾기의 한 방법일 것'이라는 소설 속 화자의 서술은 오랜만에 창작 활동을 재개한 작가가 가졌을 마음가짐을 헤아리게 한다. 작품의 내용이 자전적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작가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들면서 그 경계를 흩뜨리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동안 일상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 다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안 써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내 안에 소설에 대한 갈급함이, 그리움이 함께 있었다. 이제 다시 시작했으니, 이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세상에 선보이는 한 작품을 제대로 완결시키고 싶다."
/김지영기자 kim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