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배우의 유형은 두 가지이다. 웃기게 생긴 사람이 웃기는 경우와 안 웃길 것 같은 사람이 웃기는 경우. 배우 김하늘(26)은 단언컨대 후자다. 우선 얼굴이 참 순하게 생겼다. 좀 세게 야단치면 금세 그 큰 눈에서 닭 똥 같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드라마 '피아노'에서 보여준 청순 가련한 이미지가 제격이다. 그러나 김하늘은 진짜 웃긴다.20일 개봉하는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관객을 뒤집어지게 만들 한 장면. 교도소에서 갓 가석방된 사기꾼 영주(김하늘)가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순진한 시골약사 희철(강동원)의 집을 찾아간 장면이다. 희철이 우연히 가져간 자신의 가방을 되찾기 위해서다. "희철씨의 아기를 가졌다"며 희철의 아버지 앞에서 통곡하는 영주. 그러다 분위기상 사기가 결국 들통날 것 같자 이번에는 방바닥을 내리치며 더 크게 통곡한다. "그래요. 임신은 안 했어요. 그러나 희철씨를 사랑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에요."
―정말 웃깁니다.
"지난해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마찬가지지만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망가지면 참 재미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생긴 거와 다르게 따뜻한 닭 가슴살 회를 먹어봤다고 하면 다들 놀랄 걸요? 이번 영화에서는 더욱이 '구라'(말발) 하나로 먹고 사는 사기꾼에다 순진한 남자를 갖고 노는 역할이에요. '동갑내기…'에서는 약간 주눅 든 여대생이라서 좀 제약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맘 먹고 더 망가지고 오버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오버했는지 알 수 있는 촬영 에피소드 하나. 희철이 기차 안에서 애인에게 줄 반지를 하필이면 영주의 다리 밑에 떨군 장면이다. 꾸벅꾸벅 졸다가 낯선 남자가 자신의 다리 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을 본 영주. 당연히 남자의 뒤통수를 내%B리쳤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스태프 분들이 '억!' 소리를 내시더라구요. 강동원씨는 일어나질 못하고. 그래도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길래 더 세게 때렸죠. 나중에 강동원씨가 말했어요. 다음 대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요."
―너무 코믹연기로만 나가는 것 아닌가요.
"사실 '동갑내기…' 이후에는 코믹 연기를 좀 쉬려고 했어요. 너무 한쪽으로만 이미지가 고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가 애착이 가는 것도 코미디보다는 멜로거든요. 흥행은 잘 안 됐지만 지난달 개봉한 '빙우'나 힘들게 촬영한 드라마 '피아노'가 많이 생각나는 것도 두 작품 모두 멜로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난해 5월 드라마 '로망스'를 찍으면서 '그녀를…' 시나리오를 읽어본 순간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웃고 떠드는 코미디 영화의 미덕은 뭘까요.
"공포영화는 보고 나면 그날 밤 가위 눌리곤 하잖아요. 그러나 잘 만든 코미디 영화는 키득대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들죠. 더욱이 '그녀를…'은 고아로 자란 사기꾼 영주가 희철의 단란한 가족애에 빠져드는 과정도 비중 있게 다루죠. 영화관을 나서면서 유쾌한 기분이 들면서도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면, 그게 코미디의 미덕 아닐까요?"
그러나 김하늘은 다음 출연작품을 공포물로 정했다. 6월 개봉 예정인 '령'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으로 나올 예정. 주인공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는다는 심리 공포물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만큼 과거와 현재를 다르게 연기하는 게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참 욕심 많은 연기자'라고 생각하던 기자에게 김하늘이 불쑥 한 마디 했다. "그런데 닭 가슴살 회 드셔봤어요? 전 소 혀도 먹어봤는데…."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그녀를…" 20일 개봉
'그녀를 믿지 마세요'(감독 배형준)의 부제는 '애정빙자사기극'이다. 가증스러운 눈물 연기로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사기꾼 영주(김하늘)의 천방지축 사기행각을 그렸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순진한 시골약사 희철(강동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영주가 자신의 잃어버린 가방을 찾기 위해 희철과 희철의 가족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극이 볼만하다.
희철의 시골마을로 가는 택시 안. 능글맞게 생긴 택시기사(류태호)가 예쁜 영주에게 수작을 걸자 영주는 "희철 집안의 며느리 될 사람이에요"라고 둘러댄다. 희철의 둘째 고모부였던 택시기사는 화들짝 놀라고, 이때부터 영주의 본의 아닌 사기극이 펼쳐진다.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로 데뷔한 모델 출신 강동원의 영화 데뷔작으로, 강동원도 김하늘만큼이나 망가진다.
그러나 초반 30분의 '빛 나는 웃음' 이후로 영화는 좀 늘어진다. 초반에 관객을 실컷 웃겨는 놓았는데 뒷감당이 안 되는 기분이다. 속마음은 따뜻한 영주와 대비시키기 위한 희철의 이기적인 애인(남상미)의 등장이 영화 분위기를 오히려 흐트러뜨린다. 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의 하반기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 '비둘기 둥지로 날아든 뻐꾸기'를 원안으로 한 작품. 12세 이상. 20일 개봉.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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